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자신의 모든 비밀을 털어 놓은 안네처럼 그렇게 이레네의 이야기는 시작 된다.   
'밀밭에서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르더니 태양을 향해 희미한 점 하나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때 총소리가 들렸고 새는 털썩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것은 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가 아니었으며, 그곳은 밀밭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곳이 어디였는지 알 수 없다.
그 전쟁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끔은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가능했을까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게 나였던가? 그 소녀가 나였던가? 내가 그곳에 정말 있었나?.... 아무래도 천천히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고 생생하게. 맨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니까., (/ p.10)

폴란드 인임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부모님과 네명의 딸들은 하느님을 믿으며 단란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집안의 맏이였던 열일곱 살의 이레네 구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며 간호학교 학생이였기에 망설임 없이 전쟁이 발발하자 부상병을 따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독일과 소련 두 나라의 군인들은 그녀의 조국이며 가족들이 살던 곳을 무참히 짓밟고 파괴하였으며 전쟁은 그녀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엇고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건물은 파괴되었으며, 폴란드의 모든 지식인들과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들 대부분이 수용소로 보내졌고 상당수는 처형되었다. 조국은 적들의 전쟁터로 변했다. 그리고 전쟁은 그녀의 순결마저 앗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했다. 이 모든 것들과 싸우기로.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유대인들의 탈출을 돕거나 독일군에 맞서 싸우는 레지스탕스 대원이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쟁포로로 끌려 갔으나 유창한 독일어 실력과 외모 덕에 독일군 장교식당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우연히 게토안의 유대인 학살 장면을 목격한다.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저 행운이라 여기며 다른 이들의 고통을 줄곧 외면해 온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그리고 담장 밑에 음식을 가져다 놓는 것으로부터 그녀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유대인을 도와주는 사람은 누구든 사형에 처해지던 때인만큼 그것은 목숨을 건 행위나 다름 없었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가스 처형실로 보내질 운명에 처한 천 여명의 사람들을 피신켜 그들의 목숨을 구했듯 이레네는 나치의 계획과 정보를 게토의 유대인들에게 전달해 주고 강제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세탁소에서 일하게 주선해 주었고 그들을 수레에 태워 탈출시키기도 했다.또한 나이든 나치 장교의 가정부로 일하게 된 그녀는 열두 명의 유대인을 그의 집 지하실에 숨기고 독일군이 패망할 때까지 보살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숱하게 넘기고, 가슴에 그토록 많은 상처를 받고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저릿해져 온다. 

전쟁은 끝났고 그녀의 투쟁도 끝이 났지만 그녀가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픈 기억들로 인해 지금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다고 솔짓하게 털어놓는다. "마치 안개 속에서처럼, 공중에 던져진 갓난아기의 모습이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스스로 그 장면을 바꿔 보려 한다. 무엇인가가 공중에 던져진다. 그것은 한 마리의 새이다. 새장을 빠져나온 한 마리의 작은 새이다. 새는 나무 꼭대기와 지붕 위로 높이 날아오른다. 어린 소녀는 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가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것은 가볍게 날아오르는 작은 새이다. 작은 참새 한 마리이다. "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처참하고 가슴아파 몇 번이고 책을 내려 놓고 눈물을 훔쳐가며 읽어야만 했다. 비록 전쟁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작고 힘없는 여성을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그녀는 친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보여준 용기에 숙연해 진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전쟁의 또 다른 비극을 알려준 절절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땅에 전쟁만은 사라지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