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침몰했다.

태평양 한 가운대에서....

겨우 구명 보트에 올랐지만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식구(?)들은 절망 스럽기 그지 없다.

구명보트의 앞부분은 200kg의 뱅골 호랑이가, 주인공 파이 뒤로는 뒷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한마리, 그 옆에 서성이는 하이에나 한마리, 세상 물정 모르고 바나나만 챙겨들고 있는 오랑우탄 한마리...

어느날 저녁 해가 지고 어두운 밤, 하이에나가 얼룩말을 잡아 먹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세운다....

몇일후 하이에나와 오랑우탄의 서열 싸움이 벌어지는데....

작가 얀 마텔(2002년 부커상 수상)은 주인공 파이를 통해 동물들의 습성을 잘 전달 하고 있었다. 동물들의 영역싸움과 서열싸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맹수로써 가지는 강렬함과 또한 그 속에 묻어 있는 온화함을 표현함에 있어 언어적 표현으로 치자면 "언어의 마술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최고의 찬사를 받을만 하다.

책의 1/3을 다 읽어 가도록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하던 순간이 어느 순간 급격한 물살을 타듯 애간장을 태울정도로 소설속의 현실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책을 읽고 싶다는 의욕이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절박한 책을 접한게 아닌가 싶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반전의 반전은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록 짜릿했다.

결국 주인공 파이는 작은 구명보트 안에서 호랑이와, 오랑우탄, 얼룩말, 하이에나와 227일간의 긴 여정을 보내게 돼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동물들의 서열싸움으로 식구(?)들이 줄어들게 되는데.... 첫날밤 하이에나에게 뒷다리를 다친 얼룩말이 희생되고 다음날 오랑우탄과 서열싸움에서 몇번의 싸움끝에 하이에나는 오랑우탄의 머리를 두동강내서 잡아 먹는다. 다음은 주인공 파이 차례였지만 파이의 옆에는 마취제를 맞아 정신이 혼미한 호랑이가 있었기에 주인공 파이 에게는 덤비지 못했다.

기어코 호랑이는 마취에서 풀려나고 하이에나는 그동안 누리던 모든 영역을 바치고 결국 호랑이에게 내장이 뜯겨 나가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내용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주인공 파이가 죽을날이 다가오는것이 느껴졌지만 더욱 아이러니는 호랑이는 파이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동물간에는 서로의 영역이 있기때문이라는데... 그 영역을 만들고자 파이는 자신의 소변을 배의 중간부분에 뿌려 호랑이의 영역과 주인공의 영역을 구분을 짖는다.

죽은 동물의 내장으로 낚시를 해서 목숨을 부지해 가는데....

그 절망의 나날 속에 주인공 파이는 말한다.

"살아나고 싶다면 적응해야 한다. 많은 것이 소모된다. 가능한 곳에서 행복을 얻어야 한다. 지옥의 밑 바닥에 떨어져서도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지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 된 기분이된다. 왜일까? 발아래 작은 물고기 한마리가 죽어 있으므로..."

- 얀 마텔, 파이 이야기 본문 중에... -

더욱 아이러니는 결국 생존자는 200kg짜리 뱅골호랑이와 주인공 파이 둘 뿐이었다. 캐나다의 어느 해변에 다달았을때 뱅골호랑이는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흙냄새를 조금 맡은 후에 곧장 앞만 보고 갈길을 가버린다. 곧이어 주위에 사람들이 나타나고 주인공 파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그를 위해 음식을 주지만 정작 주인공 파이는 밀려오는 서러움에(호랑이가 자신에게 인사조차 안하고 갔다는 사실이 서러워서)발버둥을 치며 눈물을 흘린다. 더욱이 아무도 호랑이의 존재를 믿어주지 않는다.

책의 끝은 배가 침몰한 과정을 조사하기위해 현지 조사단이 와서 유일한 생존자인 파이에게 질문을 하는 과정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조사단원은 아무도 파이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책 읽기를 마치고 책을 덮는 순간 못내 아쉬움이 밀려온다.

마치 어느 여름밤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옛날 얘기를 들으며 잠이 드는것만 같은 편안함과 이야기에 취하는 긴박함이 함께 있는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