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나른한 봄 강의실에서 로마인이야기 1권을 펼쳤다. 군대에서 기번의 로마쇄망사를 읽어 로마 역사에 대해 예습은 한 상황이었다. 서둘러 출간되어 있는 몇권의 후속편을 읽고 그후 매년 연말을 설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로마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 후 나의 추천 도서 목록에는 이 로마인이야기 시리즈가 빠지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가 들려주는 이성에 대한 설명만 듣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꼴이 된 것이다. 어찌되었건 로마인이야기는 재미와 지식을 함께 주는 작품이다. 작가 시오노나나미 선생의 매년 15권까지 쓰겠다던 약속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로마인이야기 15권을 집어들고 가장 먼저 펼친 것은 작가의 집필 후기였다. 장장 15년을, 15세 소년이었다면 서른살의 청년이 될 그 긴 시간을, 이 대작을 위해 투자했다면 감회가 깊었으리라. 하지만 그의 후기는 로마의 패망과 같이 허무했다. 마치 오랜 짐을 벗어 놓은 양 홀가분한 기분까지 전달되어 왔다. 이런 대작을 이런 차분함으로 마칠 수 있는 것도 대 작가의 능력인가?

로마인이야기는 몰입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가 슬퍼하면 함께 슬퍼하고, 사랑하는 이의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처럼 위대한 제국 로마의 쇠락은 슬픔과 분노를 함께 느끼게 한다. 이미 5현제 이후 몰락해 왔건만 마치 소설을 읽고 있는 사람처럼 마지막 대반전을 의미없이 기대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로마는 중요한 갈림길마다 내리막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집필 내내 조국 일본과 로마를 비교하고 있었을 것이다. 독자인 본인 또한 내 조국의 역사와 로마의 역사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역사로 부터 배우게 되고 인간사는 돌고 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지 않겠는가?

본인도 역시 담담하게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청년기의 혼란, 망설임, 두려움이 모두 고스란히 로마인이야기에 투영되어 있다. 이제 서른의 허리를 돌아가는 지금 작가의 집필후기처럼 잔잔히 음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