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을 넘긴 소설가가 자신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전혀 미화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유교문화의 전통이 오늘날에도 시퍼렇게 남아있는 안동지방에서 작가의 어머니로 짐작되는 주인공의 어머니는 두 번이나 사내를 갈아치운 여자였다. 배운 것도 없고 지지리 복도 없는 엄마는 한평생을 과부하가 걸릴 만큼 중노동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식에게 변변한 음식마저 먹여보지 못한 채 궁핍한 삶을 가녀린 여자 혼자의 몸으로 온전히 견뎌내야만 했다.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하고 박복한 인생을 살아온 엄마에게 두 사내는 평생 아무런 도움이 못됐다. 한집건너 종가집이요, 유교문화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이 고장에서 어머니는 이웃의 비난과 조소를 침묵과 노동으로 묵묵히 견디며 아무런 존재감 없이 숨죽여 살아왔다. 오로지 자식과 먹고살기 위해 의붓 아버지를 들였지만 무일푼에다 한량에 불과한 그마저 부양해야 했던 어머니는 일찍 외지로 나간 자식이 성공하여 명성을 얻었음에도 한번도 어미로서 떳떳하게 나서지 못했다. 당신의 죽음조차도 자식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일체의 장례절차 없이 조용히 화장해줄 것을 당부했다.

“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소설은 한밤중에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아우의 전화로 시작된다. 십여년 전 신새벽에 올케로부터 걸려온 내 어머니의 죽음이 오버랩 되면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머니 곁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아우와 서울에 사는 주인공 나는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형제다. 주인공은 어릴 적 아버지의 부재 속에 자랐지만, 아우는 달랐다. 그럼에도 이들 형제에게는 나이테처럼 지울 수 없는 각자의 또렷한 아픔과 상처가 켜켜이 쌓여있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던 주인공은 이튼날 어머니의 생전 유언대로 장례절차 없이 곧바로 화장을 강행한다. 염을 하기 위한 어머니의 노구(老軀)는 바싹 말라 있었다. 잘 때를 제외하곤 평생 누운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어머니였다.

아우와 함께 한 줌의 먼지가 된 어머니를 뿌린 곳은 유년시절의 찢어지게 가난하고 슬픈 추억이 깃든 마을 뒷동산. 어머니 유해를 뿌리고 고향을 돌아보는 사이사이에 어릴 적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더울 땐 “덥제?”, 추울 땐 “춥제?”라는 말이 전부이지만 늘 시선을 내게 두던 어머니, 막일을 한 품삯으로 생활을 이어간 어머니, 새아버지가 휘두른 회초리를 빼앗고 나를 보듬은 어머니, 잠든 나를 가만히 껴안은 채 오열하는 어머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무언가 어렴풋이 내 시선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먼지였다. 내 심장을 덮고 있던 미세한 먼지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안치실 냉동 캐비닛에 갇혀 있었으므로 성에가 하얗게 끼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엄마에 대한 원망을 지금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던 주인공은 시나브로 씨앗처럼 민들레처럼 한줌의 재로 변한 엄마에 대한 애잔함과 그리움으로 자꾸만 흔들린다.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생애에서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며 "그 외에 내가 고향을 떠나 터득했다고 자부했었던 사랑, 맹세, 배려, 겸손과 같은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들은 속임수와 허물을 은폐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노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깊은 참회록과도 같은 이 소설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자 뭉클한 감동으로 전해온다. 모진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살아온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그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