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집을 나서는 길. 손바닥을 펼치고서 인사를 건내는 개나리를 보고서 새삼 미소가 번진다. 손을 크게 펼치고 눈을 가리면 세상은 어느새 어둠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다시 손을 옆으로 옮기면 파아란 하늘아래 내가 존재함을 느끼곤 한다. 세상은 그런의미에서 손바닥안이다. 누군가 훤이 보이는 꼼수를 보이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넌 내 손바닥안이야. 그런 의미에서 손바닥 수필은 세상을 거느리고 있다. 그녀는 슬며시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비밀을 말이다.

내게 있어 글쓰기란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호시탐탐 가격해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허무에 대한 전면전 같은 것이다. 글도 삶도 손바닥 크기를 넘지 못했다. 쓸쓸한 일이다.

<책머리에>

이따금, 책을 보고 좋은 문장이 나오면 수첩에 옮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좋은 문장들을 내안에 스며들어 나오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적기가 바쁘다는 생각마저 들게한 책이다. 일상적인 것들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때로는 깊게 때로는 엉뚱하게 접근하며 써내려갈 그녀의 필체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 봄이야, 봄. 봄(見 seeing)이라고! 봄에는 그저 '봄'만 할 일이야. 나무처럼 안으로 아이를 감추고 봄 햇살속으로 '봄'하러 가야겠어

<p.43>

참으로 이제는 봄이다. 그런데 봄을 본다는 관점에서 새로이 말하고 있다. 이렇듯 세상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고 있다. 그녀의 책은 그녀의 손바닥위에 세상을 쪼물닥거리며 그녀의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그것이 싫지가 않다. 그녀는 글도 삶도 손바닥 크기를 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알고보면 세상은 손바닥안이다. 되려 세상을 손바닥위에 두고 보고있는듯 그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곳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 몫의 삶을 묵묵하게 살아내는 갈모산방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고 제 가진 능력과 소유를 나누는, 그렇듯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세상이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것 아닐까. 이마에 띠를 두르지 않고도, 광장에서 촛불을 들지 않고도, 갈모산방은 세상을 떠받친다.

<p.111>

나는 건축을 전공하다보니 이렇듯 건축관련 용어를 일상적인 것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갈모산방은 한옥의 부재인데, 한옥지붕 고유의 날렵한 맛을 내기위해 선자서까래 아래에 대는, 삼각형 모양의 부재를 일컫는다. 갈모산방은 흔히말해 한옥의 멋을 내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이 말을 덧붙인 것이다. 이마에 띠를 두르지 않고도, 광장에서 촛불을 들지 않고도, 갈모산방은 세상을 떠받친다고 말이다.

이 책은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도 같다. 끝이 보이지 않듯 이 책의 끝을 알 수가 없다. 분명 손바닥안인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시. 다시 앞으로 가보자. 그녀가 궁금하다. 그런데 그녀의 소개글이 눈에 와닿는다. 아니 첫페이지를 펼치고서 나는 감탄을 연발했다. 하지만 그녀의 소개글을 나중에 적고 싶었다. 더 여운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최민자

전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시인을 꿈꾸었으나

머뭇거리고 서성걸리다 아까운 날들을 떠내려 보냈다.

몇 권의 책을 내고 몇 가지 상을 타기도 했지만

쓰는 일을 통한 자아 확장과 소통의 기쁨을 가장 큰 성취고

소득이라 생각한다. 삶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와

불가해한 은유들을 정관의 여유 속에

풀어내고 싶어 수필 쓰기를 선택했다.

<손바닥 수필 저자소개글>

나는 고백하건데, 이렇게 좋은 저자소개글을 처음 보았다. 항상 저자의 소개는 스펙나열하기에 바쁜데, 그녀는 스토리를 적었다. 때론 스토리가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하다. 모두들 스펙을 나열할 때, 홀로 조용히 수필처럼 이야기를 펼치는 그녀의 소개마저 책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강렬한 햇빛도 손바닥 하나면 그늘을 만들기도 한다. 조금만 흔들면 시원한 바람을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예기치못한 손찌검을 하면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이 손이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친해지자고 말하기가 민망할 때, 악수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손바닥 아래 사는지도 모른다. 혹은 손바닥 위라고 한들, 그 범위는 손바닥을 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을 글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손바닥 수필이 아닐까하고서 나에게 질문을 남기고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