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병선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잘 몰랐다. 먼저 이 부분이 너무 미안하다. 혹은 무례하기까지 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중요성을 몰랐다는 점도 다시금 사과를 하고 싶다. 이렇게 역사에 대하여 무지한 내가 어찌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행위에 뭐라고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저 나를 반성해본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박병선. 그 아름다운 이름을 말이다.

 

 직지의 중요성은 내용보다 형식에 있다. 칸트는 형식미학이라고 해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은 내용에 첨가되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침전된다고 했다. 어떠한 형식이 있었을까. 바로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세계에 나오기전에 '쿠텐베르크 42행 성서'가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직지는 78년이나 앞선 금속활자 인쇄본이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훌륭한 업적을 알리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을 알리려 노력했던 이는 나라가 아니라 박병선 개인이었다는 점이 놀랍다.

 

 그녀의 노력은 대단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뻐서가 아니라 어떤 일에 몰입하는 행위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직지가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검증을 한 인물도 박병선 개인이다. 한 개인이 역사에 사라지려했던 것들을 들춰내려했다는 점은 놀랍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해도 안된다는 식의 말을 자주한다. 불가능해보이는 것들을 하면 흔히들 뻘짓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녀는 뻘짓이었을지도 모른다. 남들의 시선에는 충분히 그렇게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보여진다.

 

 그렇다면 직지와 외규장각은 의궤는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볼 수 있다. 바로 프랑스이다. 프랑스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 탄압에 대항하여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으로 인해 당시 조선의 보석과 책을 가져가게 된다. 그 사건이 바로 병인양요이다.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반환해야 합니까?"

박병선은 또박또박 대답했다.

"만얀에, 프랑스 루이 14세의 왕실 행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당시의 사회, 경제, 문화를 통찰할 수 있는 자료가 고스란히 담긴 문서의 유일본이 다른 나라에 있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프랑스 인은 대답했다.

"당연히 찾아와야지요."

"네, 그게 맞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당연히 되찾으려는 것입니다." <p.141>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규장각 의궤는 우리에게 돌아왔으나 불완전하게 돌아왔다. 그것은 대여방식이다. 그녀는 말한다. 외규장각 의궤에 '대여'라는 말이 사라지고, 완전한 우리의 '소유'가 될 때까지 노력해야만 한다. 그녀는 결혼도 하지않고 일생을 한국자료와 고문서들에 파묻혀 살아온 인물이다. 그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또 이일을 하겠냐고 박병선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물론이죠"

 

 그녀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하든 인내와 끈기를 가지라는 말을 했다. 그녀의 삶이 끈기 자체이기도 하다. 그녀의 책 마지막 말이 너무 인상적이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몇십년을 있으며 역사적인 책들을 잊지않았던 인물이다. 한국에서 사는 우리들이 외면했을 때, 먼 프랑스에게 외면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나라면 할 수 있을까? 결혼도 포기한채 단지 역사적이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한듯 살았던 그녀의 삶을 말이다. 아니 그녀는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것 자체가 본인의 삶이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표현이 더 옳다. 그녀는 그렇기에 존경받아야 한다.

 

 "내가 떠나게 되면 내 유골을 노르망디 바닷가에 뿌려 주세요. 그러면 물고기들과 노닐며 헤엄쳐서 멀리 멀리 흘러가겠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리운 내 나라 어느 바닷가에서라도 다다르게 될테지요. 나는 그렇게라도 영원히 조국에 있고 싶어요." <p.162>

 

 그녀는 맑고 톡 쏘는 추운 초겨울 이른 아침. 기나긴 여행을 떠났다. 그녀가 하늘위에서 비를 내려주는 듯 하다. 오늘은 따스한 비가 내리는듯 마음이 차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