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끝에 철학

쓸고 닦았더니 사유가 시작되었다

저: 임성민

출판사: Whale Books 출판일: 2018년 3월14일

 

작년에 출간된 임성민의 ‘지식인의 옷장’을 읽은 이후에 우연하게 그가 쓴 다른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은 ‘청소 끝에 철학’. 책을 읽기도 전에 갑작스레 여러 가지가 상상되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집이든 일을 하는 사무실이든 청소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 일상의 일을 통해서 어떤 사유를 했을까? 가끔 세상사가 복잡할 때는 오히려 생각을 할 수 없는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데.

 

원래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주말에는 곧잘 식사를 준비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 설거지를 할 때면 나는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사람은 요리를 하는 것은 괜찮지만, 설거지를 하는 것은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임성민은 해야만 하는 일이 정해져 있는 설거지 보다는 자신이 주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청소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지만.

 

설거지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를 했듯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강력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내 귀 밖의 소음을 거의 모두 차단한다. 정적 속에서 내가 선택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릇을 닦고 물로 헹군다. 차곡차곡 쌓은 식기 대열을 보면서 무엇인가 정리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은 안정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점점 복잡하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지쳐간다. 그럴 때 청소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겠지만, 그것이 당신을 어떤 식으로든 위로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소매를 걷고 대청소를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이 책의 저자가 어딘가에 방치되어 기억에도 사라진 옛 기억을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에 소중하게 모았던 장신구라든지 사진, 글, 편지 등등을 마주할 지도 모른다. 그러한 것은 모두 그가 말한 자취일 것이다. 그렇게 집이라는 공간은 살아가는 우리의 자취가 묻어있다. 하찮은 과거를 마주하고 쓴 웃음을 짓고 쓰레기통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자취들. 청소를 통해서 그 자취가 사라지고 다시 의미를 가질 일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과거를 지우는 것은 아니다. 자취는 그가 말한 듯이 내일을 위해서 정리되는 것이니까.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가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하고 다시 어머니를 닮아가는 자신을 깨우쳤듯이 인생의 미묘함을 배울 수도 있을 테다. 소소하지만 일상 속에서 청소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의미를 가져다 줄 법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깨달은 한 가지. 저자가 해외에서 유학을 했던 것처럼, 나 역시 호주에서 잠깐 지낸 적이 있다. 현지인의 집에서 숙박을 했었는데. 그 때 당시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좌식생활을 하는 한국과 입식생활을 하는 서양. 그리고 그로 인해서 전혀 다른 청소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오히려 책의 처음은 그런 차이가 더 흥미진진했다) 소소하다면 소소한 것이지만.

 

임성민은 영화의상 스타일리스트, 홍보회사 아트디렉터, 패션가방전문회사 대표 등을 거쳐 현재 패션컨설팅 회사의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며 경희대 의상학과 및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청소끝에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