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자주 인용되듯 '나'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나, 더 나아가 내가 속한 집단을 잘 알고 있을까? 아무래도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자신의 사회적·경제적·교육적 배경에 좌우되며 아주 개인적인 인생 경험이라는 렌즈를 통해 문화를 해석한다. -p. 6

 

그렇다면 저자 베르너 사세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았을까?

 

일단 저자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한국의 일원으로서 하지 않았고 할 생각조차 없던 우리 문화 둘러보기를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간접적인 체험이나마 즐거웠고 그래서 더욱 고맙다.

 

그러나 한복은 현대 한국이 전통적인 한국과 얼마나 잘 연결되지 못하는가를 드러내는 사례다. 현대의 한국인들, 특히 대도시 사람들은 자국 역사와 전통문화에 자부심이 없고, 대다수가 여러 측면에서 가능하면 서구식이 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전통문화의 요소들을 조금 불편하게 여긴다. '현대 한국인의 정신에 존재하는 분열'인 것이다. -p. 56

 

사세는 초반부터 열심히 꾸짖는다. 책장을 넘기면서 정말 부끄러워졌다. 내가 한복을 입어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최소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러면서 한복의 아름다움이나 곡선에서 비롯되는 우아함을 자랑했다니 가식이 아니었던가.

 

외국인의 시선이여서 그런지 사세가 재치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웃음이 나는 부분이 몇 번 있었다.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새로운 트렌드를 거북해 해서 식기세척기 판매가 증가하는 것 같다니! 서구인들이 "즐겁게 식사하세요"라고 할 때 우리는 "많이 잡수세요"라고 한다는 부분에서는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선비가 한국의 보헤미안이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어리둥절해졌다. 이건 또 무슨 이상한 소리람?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보헤미안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득당하는 건지 모르겠네 싶을 때 소쇄원이 등장했다. 몇 년 전에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그 곳은 작은 규모에 조용한 분위기를 양산하는 곳이였다. 그렇지만 다른 유적지와 비슷한 것 같고 무더위에 지쳤는지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사세는 무언가 느꼈던가 보다. 정자에 느긋하게 앉아서 선비 정신을 떠올렸다고 한다.

 

책 전체에서 유교 부분과 띠 문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특히 유교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좋은 점이 예전보다 좀 더 보였다.

 

공자의 가르침도 역사적인 맥락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공자의 가르침은 어구에만 연연하지 말고 기본적인 사상이 가진 의도에 초점을 두고 재해석되어야 한다. -p. 110

 

계층은 비판적인 충성심으로 제어될 때만이 긍정적인 가치가 된다. -p. 112

 

무당을 두고 무정부주의적 응답이라고 하는 것도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읽으면서 내내 느꼈지만 새로운 깨달음의 연속이였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정말 그렇게 느끼다니 신기하다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참 많다. 우리가 삼국시대라고 말하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시대는 사실 가야를 포함해 사국시대라는 것. 전기 신라 700년간의 삼국시대 중에서 500년간은 사국 시대였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국사 시간에 가야는 조금만 배웠을까? 그리고 한글만이 유일하게 반포된 시기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은 아니였다. 이 때는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티베트의 파스파문자가 있다고 한다. 소리의 중요성 또한 깨달았다. 훈민정음이라 하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고 했는데 해석의 순서를 조금 달리하니 '백성에게 바른 소리를 가르친다'가 되었다. 영어나 한자를 공부할 때 음(音)보다는 뜻이 중요하다고 여겨왔는데 반성하게 되었다.

 

'낭만적으로 묘사된 과거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와 영화를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잘못 해석하면 안 된다(p. 178)'는 부분에서는 머쓱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관심은 관심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역사에 진정으로 열성을 다해 공부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수능 언어영역 고전시가를 공부할 때 운율을 위해 '아롱디리'같은 표현을 넣는다고 배웠다. 그 부분이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았는데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3행의 4구는 없어도 시조의 의미가 잘 이해되기 때문에 대개 창으로 부르지 않는다(시집에서는 종종 '엇더리'나 그와 유사한 표현을 덧붙이기도 한다). -p. 187

 

조금 따분하게 시작해서 위트있게 얘기하고 유기적 연결을 보여준 다음(한 장에서 다음 장으로의 연결이 아주 좋았다!) 따끔하게 마무리한다. 씁쓸하고 조금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꼭 그렇지는 않은데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아닌가 하는 부분도 있었고 놓치고 있던 걸 알려주기도 했다.

 

책 전체에 다소 어색한 표현이나 어구가 조금씩 보였지만 그건 표현의 한계가 아니였던가 생각해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사실 50년동안 한국을 연구하셨지만 원어민이 아닌 이상 어색한 표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오타가 없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였다.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더라도 오타가 발견되면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이 책에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239쪽에서 소셜 '네크워크'라는 부분이 있어 혹시 '네트워크'의 오타일까 싶어 검색했는데 유사하게 쓰이는 것 같다.)

 

제목도 정말 '예쁘고' 표지도 한국적인 미가 느껴졌다. 그리고 띠에 대한 얘기를 보면 저자가 합리적이고 포용할 줄 아는 사람 같았다. 내가 속한 집단, 이 소중한 국가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로 더욱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물안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장단점을 바라보고 진정한 한류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을 아는 과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