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항상 시간이 모자르다고 불평하면서도,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우를 범하며 살고 말았다. -p. 118

 

 차분하게 프롤로그를 시작하고 100쪽 정도 읽으면서 예상했던 정도의 느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문장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침대에 엎드려서 읽고 있다가, 꼭 나에게 하는 소리 같아서 벌떡 일어났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나만 그런게 아니였구나!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무난한 내용으로 고개 끄덕일 수 있었다. 특히 샤워기 덕분에 득음한 아저씨와 미용실에 가서 가려운 곳이 등이라는 대답은 웃음을 주었고, 6인분 찌개를 위해 2인분용 찌개 3개를 만든 부인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물론, 읽다가 중간중간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크게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카툰 자체 혹은 글 자체에 공감할 수 없는 것. 두번째는 좌측의 카툰과 우측의 글이 관련성이 부족해서(심한건 상반되는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 혼란을 주는 것. 첫 번째 유형의 예는 가훈에 대한 카툰이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우리 가훈은 우리집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문구라서 카툰에 절대로 공감할 수 없었다. 물론 근면하지 못해서 혹은 성실하지 못해서 그걸 가훈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두번째 유형의 예는 (이것 또한 내 생각일 뿐이다.)전생에 관련한 내용이다. 왼쪽 카툰은 새장속의 새들이 자유롭게 저녁 메뉴를 고민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디든 어떻습니까? 우리에겐 자유가 있으니 말입니다.' 라는 말을 해준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로움이 있을 수 있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오른쪽 내용은 전생에 내가 사랑한 사람의 얼굴이 지금의 얼굴이라는 내용. 나만 이 두가지의 관련성을 파악하지 못한건지, 아니면 원래 똑 떨어지지 않게 표현하는게 광수생각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 중반쯤, 내가 야구를 좋아해서 그런건지 몰라도 두 가지 종류의 직구에 대한 카툰이 마음에 들었다.

 

투수의 직구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직구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직구를 던지면 타자가 안타를 치겠지?

라고 생각하며 던지는 직구.

 

내 직구는 그 누구도 쉽게 칠 수 없어.

라고 생각하며 던지는 직구.

 

당신의 직구는 어느 쪽입니까? -p. 156

 

 이 페이지 넘어가서 조금더 읽고 책을 덮었는데 마침 오승환의 아웃 카운트가 하나 남은 상황이라 '돌부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직구를 던질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안타를 맞았지만 결국 세이브를 기록했으니 다행이란건 여담이다.

 

 213쪽에서 그 많던 별들은 나를 떠나 다 어디로 간 걸까? 라는 문장을 읽고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별을 떠난게 아닐까! 물론 아주 건방진 한 마디지만 나 스스로에게 한 말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253쪽에서 초판본에 오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백을 보고는 소탈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러면서 또 웃음이 나와서 참으로 죄송하다. 왜냐하면 유감스럽게도 오자 비슷한 걸 앞쪽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부처님 불상이란 단어가 유의어반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부드러운듯 하면서도 가끔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접하는 광수생각은 내 기억속의 광수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새로움에 박수도 보냈다. 마음에 들었던건 책의 처음과 끝부분의 짧은 이야기. 7장, 10장으로 보여주는 그 이야기가 여운이 오래 남았다. 새해가 되면 떡라면을 먹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