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사회적 역할은 그 성적 차이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에 걸쳐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또한 그것은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 중에 있다. 중세 때까지만 하더라도 여자는 ‘시민’ 즉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기 일쑤였고 그저 남자의 소유물 정도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근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여성의 인권은 수많은 여성의 외침과 몸부림을 통해 조금씩 그 싹을 틔울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권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인 남성들의 억압으로 인해 그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몇몇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7,80년대까지 한국의 경우만 보아도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은 여전히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고, 애초에 동시대의 남성들만큼의 교육을 받는 것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또한 여성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저 남성의 ‘대’를 이어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첩을 두는 것은 용인되었으나, 부인이 바람을 피우거나 정부를 두면 ‘화냥년’이니 뭐니 하며 욕을 들어먹는 것뿐 아니라 가문의 수치라고 내쳐지기 일쑤였다. 정절이라는 개념은 여성에게만 존재했고, 여성은 그저 집안에서 조용히 자리하는 ‘물건’과도 같이 여겨졌다.

수백 수천 년에 걸쳐 핍박받아온 여성의 사회적 입지는 현대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람’이기에 인권(기본권)은 존재하며, 대부분의 국가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자아를 실현시키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권에는 생명, 신체, 표현의 자유 등 삶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권리와 자유들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이 책, <일회용 남자>는 국민 중에서도 여성, 그들에 대한 모든 권리와 자유의 당위성을 반박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초반에는 (다른 책들에 비해)빽빽한 자간과 딱딱한 논조에 비해, 읽기에 부담이 없을뿐더러 무척 재미있기까지 했다. 저자 마이클 길버트는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지구의 탄생이라 일컬어지는 ‘빅뱅’에서부터 태초에 처음 살아 숨 쉬었던 생물들의 진화를 이야기하며 천천히 인류로 뻗어온 길을 설명한다. 또한 원시 시대의 인간의 모습을 시대적 상황과 성 호르몬에 따른 본능적 역할 분화라는 관점에서 조망하며, 남성은 사냥꾼으로 여자는 채집자로 상호 분담하고 협조하며 생존해왔다고 주장한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여러 사실들에 입각한 그의 이론이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읽다보면 분위기는 급선회한다. 저자는 점차 자신만의 운명론적 사고관이 깃든 독특한 생각을 독자들에게 주입시키려 하는데, 그의 발언 하나하나는 대부분 상당히 위험하다 할 수 있겠다. 유전학적, 생물학적인 근거를 들며 여성은 가사를 도맡고 자식을 양육해야하고 남성은 사회 활동을 통해 가정의 수호자가 되어야한다며, 여성의 채집자 역할, 남성의 사냥꾼 역할을 각자 유지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고집한다. 그는 자연이 내린 인류의 무구한 영광과 발전을 위해 여성은 사회 활동을 하지 않아야 하고(자제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직업을 갖지도 말아야 하며, 목소리 역시 낮춰야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사회나 직업 전선은 모두 사냥꾼인 남성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현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짐에 따라 그들의 여성성은 점차 상실되었고 그 자리를 ‘남성다움’이 대신하였는데, 이것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한 여성들로 인해 사회적 입지가 줄어든 남성들은 점차 갈 곳이 없어지고, 이러한 현실은 여러 사회적 병폐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이는 인류의 미래에 손실을 입힐 수 있다며 여성의 사회 진출을 무조건적으로 막으려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너희 여자들은 집에서 애나 봐라’는 식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보이려 애쓰고 있다.

남성의 성적 충동과 바람기에 대한 변명도 빠트리지 않는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닌 - 남성의 왕성한 번식력과 자손에 대한 무의식적․항시적 열망으로 인해 수시로 분비되며, 남성은 그저 이 테스토스테론에 의한 희생물일 뿐이니 그들이 바람을 피우건 하룻밤 정사를 즐기건 여성은 넓은 아량으로 그들을 감싸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은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가 아니므로 문란한 남성들로부터 (온갖 성병으로부터)사회를 지켜내고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정조 관념을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서 일부다처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그 외에도 일부다처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은 여럿 존재한다).

한편 여권 신장과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족의 해체의 주요 원인일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희미하게 만드는 주된 동기라며 이혼율의 증가, 청소년들의 비행, 범죄자의 급증 등 이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은 바로 현대 여성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전한다. 여권 신장 운동으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는 존재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고,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하는 것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던 나이든 여성들에게 더 이상 수치심을 안기지도 말고 현대 여성 스스로도 업무와 가사의 이중부담을 떠안지 말라고 충고한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존재는 남성이니 여성은 그 조력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라고 말한다.

아니 이게 말이나 될 법한 것인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는 변화를 거듭한다. 한때 남성들의 소유물로 여겨진 여성이란 존재가 아직 그 날개를 제대로 펴지도 못했는데, 저자는 다시 접기를 권한다. 그리고 자신의 바람을 온갖 과학적 실험의 결과물을 인용해가며 독자를 현혹시키기에 바쁘다. 여성은 여성만의 구역(가정)에서 활동하고, 남성의 영역(사회)에 침범하지 않길 원하며, 남성과 동등한 고등교육을 받는 것에도 불만을 제기한다. 남성이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갖는 것은 인정하며, 여성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관련된 법률 조항들을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여권 신장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인류의 발전의 장애물이라는 의견을 펼친다.

책 안에는 수많은 과학적 실험과 가설, 판례사항 등이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인용․삽입되어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자료들이 저자의 가치관에 의해 왜곡된 경우가 상당수 존재했다. 인간이라는 그 존재 자체를 목적화하지 않고, 인류의 장기적 존속을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는 듯 보이는 이론은 마치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적 가치관을 연상케 하고,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를 지닌 저자의 논조는 독자의 심기를 계속해서 건드린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나 합리적인 판례 등이 인용된 부분에서는 공감을 갖다가도, 그러한 자료를 매우 엉뚱하고 왜곡된 결과로 도출해내는 저자에게는 결코 공감할 수 없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에 마이클 길버트라는 사람이 자신만의 생각을 글로 써낼 수 있는 것은 그가 지닌 권리 표현의 일환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글이 타인을 설득하고 종용하는 식의 선동적 성격을 띤다면 좀 더 깊은 숙고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더구나 현 시대적 관점과는 대립되는 봉건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색채가 옅지만 두드러지는 듯 느껴지는 이 책은 종종 반사회적 느낌까지 자아낸다. 저자는 여권 신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당연시하는 등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가치관’은 우리가 잘못된 가치관을 교육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존재는 오히려 저자의 사고라는 생각이다. 만약 그의 의견대로 미래의 모습이 펼쳐진다면, 여성은 자손 잉태와 양육 이외에 자신만을 위한 ‘무엇’을 품고 살아가게 될까. 각자의 개성이 다른 여성들을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애나 낳고 살림이나 하라는 것은 그가 원하는 성적․사회적 노예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남성에게는 보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권리를 주며, 여성에??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 책임이 여성에게는 행복의 유일무이한 조건이라는 식의 억지궤변 역시 우습다.

만인에게 자유가 주어져, 각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체가 행복이다. 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항쟁의 역사와 법 제도가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권리와 의무를 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자들이 있다. 각자 원하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그 나름의 방법으로 생존을 위해 애써왔고,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이 사람, 마이클 길버트라는 사람은 딸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이 어떻게 살아가길 바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