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늘 승자의 편에서 써지는 법.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만고불변의 진리로 통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가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왔겠지만,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언제나 암암리에 권력의 영향이 미쳐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세월동안 많은 사학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역사로 해석해야하는지, 기록으로서의 역사도 역사로 인정해야하는지를 가지고 논의해왔고, 이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여전히 양립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신문이나 뉴스를 보듯 비판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朝鮮). 고려 말 썩을 대로 썩은 권문세족 사회에 한계를 느낀 신진사대부와 무신이 새롭게 창건한 국가. 고려 지배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얻음과 함께 점차 타락의 길을 걷던 불교를 탄압하고, 반대로 신진사대부의 정신적 바탕이 되어준 성리학과 유교를 발전시켰던 억불숭유 국가. 고려까지 이어져온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완전히 등진 채 명에 굴복한 사대주의 국가이자 노론과 소론, 동인과 서인 등 언제나 당쟁이 끊이지 않는 갑갑한 조정. 조선을 떠올려보면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관에는 물론 제대로 해석한 부분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우리 세대에까지 전해져 내려온 조선사 중에서도 인명사적 측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그 인물들은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한때 왜곡된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나라의 더 큰 재목이 될 수 있었던 그들은 국가를 위해, 의(義)를 위해 누구보다 애썼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인지 결국은 배척세력에 의해 제거되어 역사의 패배자로 남겨졌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름은 오랜 세월동안 역적이나 폭군 등 씻지 못할 오명으로 더럽혀졌다. 후대에나마 그들의 지워진 업적을 복원시키고 누명을 벗겨주기 위한 시도가 행해졌지만, 이미 왜곡된 인식이 바뀌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 책에서는 조선의 의적이나 혁명가, 충신 등 큰 인물이었던 15인에 대하여 테마별로 분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내용은 남이 장군에 관한 것인데, 어린 시절 학교 국사시간에 배운 것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남이가 지은 시조의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이라는 구절을 유자광이 억측 해석하여 예종에게 고해 누명을 씌웠다고 배웠지만, 책에서는 남이가 혜성을 보고 읊은 혼잣말을 유자광이 듣고 모함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것이 진실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유자광이 남이를 모함하였다는 주장은 서로 일치한다. 또한 아직까지도 남이 장군에 대한 모함의 근거와 그의 묘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하니 당시 백성들이 남이장군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을지, 또한 그의 기개가 얼마나 대단했을지는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해 더욱 안타까웠던 남이의 삶. 이처럼 조선의 애국자였을 위인들이 권세와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나 정적들에 의해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건들을 보니 문득 씁쓸해졌다.

과거사에 가정법을 쓴다 하여 바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만, 가끔은 이렇게 안타까운 과거사를 생각해볼 때면 헛된 가정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조선의 선구자가 될 수도 있었던 이들이 시대를 제대로 타고 났다면 지금 우리 세상사는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을까.

사실 이 책은 결코 잘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일단 매 쪽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오탈자가 존재한다. 문장 내 단어와 단어의 쓰임이 앞뒤가 맞지 않고, 문장 간의 연결도 매끄럽지 못하다. 문맥상 걸러내야 할 표현들도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간혹 보이는 외래어나 한자어 역시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덕분에 읽는 내내 문예창작과 출신이라는 저자의 학벌에 대해서도 상당한 의심이 생겼고, 단 한 번의 편집 및 교정 작업도 거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 마치 요즘 컴퓨터만 켜면 무분별하게 횡행하는 인터넷 기사들의 단면과도 흡사해 보여 꽤나 큰 실망감을 느꼈다.

기자들이건 작가들이건, 그들은 하나같이 글밥을 먹고 사는 ‘글쟁이’들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글쟁이들의 ‘작품’을 보며 옳은 표현과 그른 표현을 가를 수 있게 된다. 즉 일반인들에게 있어 신문기사나 책과 같은 공적인 글들은 마음의 양식이나 교양을 쌓아주는 것 외에도 개개인의 표준적 언어 사용에 있어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책임감이 막중한 글쟁이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가벼이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 쉬운 예를 들어보자. 유명한 클래식 음악인이 자신의 무대에서 늘 음정을 틀리고, 박자를 놓친다면 어떨까. 9시 뉴스 앵커가 항상 말을 더듬거리거나 상스러운 표현을 구사한다면 어떨까. 다시 말해 ‘글쟁이’들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그들은 글에 있어 전문인이다. 전문인은 전문인으로서의 소양과 책임감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면, 애초에 글밥을 먹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의 소재는 참 좋았다. 세종대왕이나 신사임당 등 언제나 위인으로 평가받았던 사람들이 아닌, 역사의 패자가 되어 그릇된 평가를 받아온 인물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책은 흔치 않았기에 더욱 신선했다. 하지만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날림글로 인해 오히려 내용마저 빛을 바래는 것 같아 실망과 아쉬움이 컸다. 문득 잘 편찬된 역사서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