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도전한 책은 시인 이상의 작품들입니다. 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사 지만지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하에 ‘한국 근현대시 초판본 100종’을 출간하고 있고 그 중의 한 권이 바로 이 책입니다. 각 작품들의 초판본을 수정 없이 타이핑 했기 때문에 읽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라, 시를 이해하는 것 또한 진땀나는 일이었습니다.

책에는 이런 식의 초판본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한번 감상해 보시죠.^^

 

詩第二號

 

나의아버지가나의겨테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작고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웨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웨드듸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朝鮮中央日報>, 1934. 7. 25

 

 

詩第十三號

 

내팔이면도칼을 든채로끈어저떨어젓다.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威脅당하는것처럼샛팔앗타.이럿케하야일허버린내두개팔을나는 燭臺세음으로내 방안에裝飾하야노앗다.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怯을내이는것만갓다. 나는이런얇다란禮儀를花草盆보다도사량스레녁인다.

<朝鮮中央日報>, 1934. 8. 7

 

자, 이러하니 왜 제가 읽는 것조차 힘이들다 했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책을 읽는 내내 이번책은 너무 욕심을 냈구나 싶었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요절한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이상의 시세계를 날 것 그대로 감상해 보고 싶은 순진한 이유 그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하니 시의 내용을 이해하고 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감히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지요.

그렇지만 책이 참 친절합니다. 각각의 시 아래 주석을 달아주기도 했고 또 엮은이가 해설까지 친절하게 해 주니까요. 해설을 이해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이상의 시는 다다이즘이라는 아방가르드적인 예술 정신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해설가의 언급처럼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던 이상의 예술적 감수성이 시에 그림처럼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을 정도로 영리했던 이상이었지만 폐병으로 삶을 다할 때까지 끊임없는 자살충동에 시달렸던 만큼 피폐했던 정신세계가 그대로 시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도 싶습니다.

 

위에 기재했던 詩第二號 아버지..의 시는 다른 시들처럼 띄어쓰기가 전혀 없이 기존의 문장형식을 파괴하고 거부한 이상의 심리가 역력히 엿보여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도된 혼란을 주는 것이 이상의 목적이었을거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과 고통, 연민들을 한꺼번에 쏟아 놓았음을 표현한 것일지 모른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시가 아버지의 죽음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저는 아버지가 죽은 후 자신 또한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죽고 또 다른 아들이 또 아버지가 되는 그런 과정들 자체의 허무함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것보다는 자신 역시 아버지가 되어 똑같이 그 길을 걸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연민(?) 같은 저자 본인의 감정에 더 집중해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이상의 시를 초판본으로 읽어본 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천재일거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듭니다.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는 언어유희 따위가 반복되는 시에 너무 높은 문학성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네요.

아무튼 대단한 시인의 시들을 날것 그대로 읽어보았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감상을 마쳐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