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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집어 든 책은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었습니다. 올해 들어 시작한 <세계문학 혹은 고전> 프로젝트의 6번째 책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중남미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이쯤에서 한번쯤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에서 골라보았습니다.

두 번째로 정독한 지금 다시 읽기를 참 잘했다는 것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즈음 떠오른 첫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 이 책을 처음 접하고 느꼈던 건 순전히 파란만장한 한 가족사의 이야기 혹은 4대에 걸친 ‘여성’에 주목했을 뿐 칠레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 저는 이 책이 여류작가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에 지금에서야 새삼 놀라워하는 중입니다.

저자는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여성작가 ‘이사벨 아옌데’인데 칠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삼촌이었기에 책에 묘사되는 당시 칠레의 상황이 리얼하기 그지 없습니다.

1,2부 2권으로 번역된 책을 읽으면서 각 권의 시대배경은 확실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 구조도 1부는 신비한 예지능력을 지닌 클라라를 중심에서 점차 트루에바 가문으로 확장되어 갔다면 2부는 본격적으로 칠레의 생생한 역사를 이야기에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문학사적 깊이와 의의라는 힘을 얻는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리얼한 다큐처럼 역사를 재현해내는 데에만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서사의 힘을 문학에 부여한 작가의 역량이 완벽하기 때문에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역동적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정권이 바뀌고 역사적인 사회주의적 개혁정부가 들어서려는 칠레의 과거는 그렇게 등장인물들에 의해 생생하게 재현되고 이 와중에 저자의 삼촌인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된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가 자동으로 생각이 났는데 이 영화의 제목이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를 제거하고자 한 쿠데타의 시작을 알리는 암호였지요. 1973년 9월 11일 아침 칠레는 화창하기만 한 날씨였음에도 칠레 산티아고의 국영 라디오에서는 쿠데타의 시작을 알리는 암호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안내가 계속되고 있었고 이는 미국과의 공조 아래 피노체트가 실행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책에서 이 부분은 클라라의 아들 하이메를 통해 마치 살바도르 아옌데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주는 듯 세심하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니 암살이니 말들이 많았는데 얼마 전 이러한 사망원인을 확실하게 조사하기 위해 그의 시체를 다시 꺼내 부검한 결과 자살로 결론되었지만 왠지 책에서는 군인의 총에 희생된 것 같은 뉘앙스가 풍기기도 합니다.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통령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앞으로 박해받을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나 역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심에 내 목숨 다 바쳐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조국과 조국의 운명을 믿습니다. 이 순간을 잘 극복하십시오. 그러면 조만간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자유인이 지나갈 수 있는 드넓은 가로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입니다. 나는 내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람 잘못 봤소, 배신자들. 만중이 나를 이 자리에 앉힌 이상 나는 죽어서나 이곳을 나갈 것이오.” [2권 p. 216~217중]

클라라의 남편 에스테반은 사회주의 정권을 반대했기에 이 쿠데타에 동조했지만 역사는 그의 편이 아니었음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지요. 축하파티는 잠깐의 즐거운 기억이었을 뿐 군부가 정권을 이양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장악하려 했기에 권력과 재력이라는 두 가지 지휘를 가지고 있었던 에스테반 역시 희생자로 몰락하게 됩니다.

사실 이 책은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열정적이고 주체적인 가족사를 가지고 여성주의적 시각으로도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저는 이번만큼은 칠레의 역사를 한 가운데에 두고 이들의 이야기를 곁가지로 듣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나라의 비극은 물론 그 안에 회오리처럼 휩쓸려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녹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이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서 그들은 드디어 화해와 용서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이 평범하지만 무서운 진리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달해준 저자 이사벨 아옌데야말로 정말 최고의 작가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알바는 클라라 외할머니가 모퉁이 큰 집의 영혼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클라라가 죽은 뒤 그 집에서 꽃이나 방랑벽 있는 친구들, 장난기 많던 혼령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모퉁이 큰 집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권 p.70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