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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1500원짜리 학교밥이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인테리어가 너무 맘에 드는 까페에서는 5,000원짜리 헤이즐넛을 음악과 함께 마셔대던, 시험 공부하러 간 도서관에서 친구의 짝사랑 고민에 밤새워 장단 맞춰주던, 처음 간 MT에서 좋아하던 선배를 부여잡고 괜한 눈물을 흘리던…

나에게도 그런 아련한 청춘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열여덟 다무라 히사오처럼 백여 장의 레코드를 수집하진 못해도 내 손으로 산 앨범이 책장 한 곳을 채우기도 했다. 다무라가 록 음악을 들었다면 난 휘트니 휴스턴이나 마이클 볼튼의 팝송을 열심히 들었다.

그래서 그런걸까? 처음부터 난 다무라가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졌으니.

닮은 듯 다른 듯 묘하게 어긋나며 오버랩 되는 이 친근한 시간여행의 추억들을 돌이켜보니 말이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아니 이런 청춘의 파편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우와 맥주라도 한잔 마셔야 아련하게 건낼 수 있는 이야기 인줄 알았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가슴 저 편에 꾹꾹 묻어두고 함부로 감상에 젖으면 안되는 줄 알았다.

그런 기억들이 다무라와 함께 미친듯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젊은 날의 치기인양 집 떠나 혼자 도시를 겪어보고자 상경한 다무라.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남들보다 일찍 쓰디쓴 사회생활을 맛보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한 개인으로서 존재감도 확립해나가고 그러면서도 한번씩 밀려오는 허탈함과 삶의 무게에 짓눌려보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젊다는 게 뭐가 특권인가? 젊기에 실패도 좌절도 괜찮다고? 왜? 왜? 왜?

왜 실패와 좌절도 젊음이라는 울타리에서는 당당하게 보호되는 건가? 나이를 떠나 우리는 한평생 살면서 계속 깨지고 무너질걸 아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그와 나 사이에 분명히 차이는 있었다.

그건 바로 그 상처에 살을 돋우고 메꿔가는 치유력의 차이가 아닐까?

지금 내가 푹 패인 삶의 상처를 건드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다면, 그 시절의 나는 눈 한번 찡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을 테니까.

지금 내가 너무 힘들다고 속으로만 삭이고 있다면, 그때의 나는 주위에 억지 투정이라도 부리면서 위로를 얻고 이내 다시 힘을 얻었다며 툭툭 털고 일어날 테니까.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치유의 힘이 아닐까?라고 문득 생각해본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이 위태한 듯 위험스러워 보여도 다시금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있기에 그립고, 부럽고, 아쉬운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그려준 스무살 도쿄 속 다무라의 모습에서 난 그런 강한 치유의 힘을 느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닐지언정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부여할 줄 알고, 스스로가 성장했음을 느끼고, 한번씩 자만도 하며 그 자만함에 스스로가 화들짝 놀라 한발 물러설 줄 아는 그의 성장통을 통해서 말이다.

그래서 난 여기까지 잘 와준 그에게 박수까지는 아닐지언정 등이라도 한번 툭툭 두드려주고 싶었다. 참 잘 살아왔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 달라고.

그리 대단치 않은 당신의 청춘이라 생각할지라도 그 모습에 유쾌하게 감동받은 한 인간이 여기 있으니까.

당신의 스무살 도쿄에서 내 스무살 서울을 발견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