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바탕 유행을 휩쓸고 지나간 책을 뒤늦게 읽었다. 부분부분 보았던 드라마의 장면들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조선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세종의 시대를 배경으로 세종이 많은 업적을 남기기까지 사방에 도사리고 있던 장벽들을 매우 박진감 있는 상상력으로 엮어냈다.

 

집현전 학자의 의문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매일매일 이어지는 연쇄살인으로 이어진다.  이 사건의 수사에 뛰어든 겸사복 채윤, 사람좋은 웃음 뒤에 가려진 비밀을 간직한 백정 가리온, 실어증에 걸린 궁녀 소이, 우직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무휼, 집현전 학자들, 그리고 모든 사건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세종. 이들의 얽히고 설킨 사건의 핵심은 다양한 학문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연구하려는 임금과 중국을 섬기는 사대사상을 받드는 학자들의 대립이다.

세종은 수리, 천문,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려 하였지만 최만리를 비롯한 사대부들은 오직 유학만을 받들며 그 이외의 것은 천한 잡학이라 멸시한다. 최만리는 실제로 한글 창제를 극구 반대했던 인물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부정적인 인물로 각인되어있지만, 반대로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지금의 시선으로 볼 때는 잘못된 선택이지만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에게는 반역이 아닌 나름 애국의 선택이 아니었을지.

 

드라마에서처럼 세종의 이미지가 강하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자주적인 국가를 꿈꿔왔던 군주의 절대적인 고독이 절절히 느껴진다.  다만 일개 겸사복 신분인 채윤이 마치 수사반장처럼 사건을 캐내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감옥에 앉아 사건의 실마리를 술술 풀어내는 천재적인 추리력이 조금은 과장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난 한글이 참 좋다. 본문 속 세종의 말처럼 같은 글자라도 어떤 낱말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같은 '아'자라도 '아낙'이란 말에 쓰이면 푸근한 엄마 냄새가 나고 '아침'이란 낱말에 쓰이면 눈부신 희망이 느껴진다. 또 꽃이란 글자는 정말 꽃처럼 생겼고, 숲이란 말을 숲처럼 무성하다. 이 책에서 한글 창제 과정이 나와있긴 하나 '고군통서'라는 책에 묻혀 상세하게 묘사되지 않은 것이 조금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