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중국에 출장을 간다고 한다. 6개월가량 있어야 하니 출장이라기보다는 파견이라 하는것이 맞겠다. 그러면서 전에 몇번 다녀온 중국 체험담을 이야기하는데 그때 읽고 있던 '정글만리' 소설이 생각났다. 동생도 이 광대한 중국 영토의 치열한 정글 속으로 들어서는구나.

 

이 소설은 전대광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에 뛰어든 우리나라 사업가와 그들과 얽히는 중국, 일본 사업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들이 중국 시장의 치열한 경제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면, 베이징 대학에 유학중인 송재형은 중국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특히 송재형의 의식이나 말들이 작가의 생각이라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 소설 속 인물에 이입되는 것이 좀 방해되기도 했다. 

우리 옆동네인 중국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나. 또 일본에 대해서는. 같은 동양인이라는 데서 오는 동질감도 크지만 그 동질감 속에서도 같은 듯 매우 다른 이웃들이다. 이 소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꽌시(關界)'와 '몐쯔'가 이니었을까. 관시란 관계를 뜻하는데 우리식으로 말하면 연줄이다. 중국에서는 사업에 있어서 연줄은 곧 생명이다. '몐쯔(面子)'는 체면을 뜻한다. 중국의 부자들은 몐쯔를 위해서 사람이 살지도 않는 호화로운 집을 지어놓고 과시를 한다니 말 다 했다. 우리나라도 연줄과 체면이라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먼듯하다.^^

또 눈에 띄는 건 중국인들의 미신 열풍이다. 중국인들은 숫자 8을 좋아하고, 福자를 거꾸로 걸어 놓기도 하는데 그것이 어떤 좋은 뜻의 글자와 발음이 비슷해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숫자 4를 死와 발음이 같다고 해서 꺼려하지만 이런 것은 중국에 비하면 애교에 뷸과하다. 또 마오쩌뚱을 신격화하는 것. 이런 중국인들의 뒤에는 이런 그들의 심리와 풍습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상술로 써먹는 사업가들이 있다. 빨간 내복에 금실로 그 해의 띠를 수놓는 것은 중국인들의 심리를 아주 잘 건드린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매년 띠가 바뀌니 매년 새로 사입을 테고...작가가 일려준 이 아이템은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는 셈인가?

 

중국 속에서 벌어지는 한 중 일의 치열한 경제 전쟁으로 시작해서 세 나라의 역사의식으로 끝맺는 이 소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와 연구가 뒤따랐을까 하는 생각에 우선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전작인 <태박산맥>, <아리랑>, <한강>에 비한다면 많이 아쉬운 작품이다. 10권 분량의 대작을 쓰던 작가가 이야기를 3권에 담아내기가 벅찼던 것일까. 소설의 형식만 빌어온 정보책 같은 느낌이다. 마치 학습동화를 읽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 소설은 매우 조정래 다우면서도 한편으론 매우 조정래 답지 않은 글이다. 글 속에 방대한 지식과 작가의 정신을 담아낸 것은 매우 조정래 답다고 할수 있으나, 문학적인 면을 접어둔 것은 작가답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전작들엔 지식과 정보, 작가정신 등을 담아냄과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삶이 있었고, 그들의 심리가 매우 잘 표현되어 있어 그 인물들에 공감하고 동화되어 읽었다. 하지만 정글만리의 주인공들은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읽어볼만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이웃에 대해 더 알아가며 그둘 중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세 나라가 함께 윈윈하며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