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어 <농담>을 읽었다. 밀란 쿤데라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책이다.

체코의 공산주의를 배경으로 루드빅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책의 부제를 내맘대로 붙인다면 '루드빅의 허무한 복수극', 아니면 '더럽게 재수없는 남자' 쯤으로 해두면 어떨까.

제목처럼 모든 사건의 발단은 루드빅의 '농담'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여친을 놀리기 위해 던진 농담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 이 말 한마디로 루드빅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강제 입대하여 광산으로까지 끌려간다.

세월이 흘러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데 큰 역할을 한 제마넥에게 멋진 복수를 꿈꾼다.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유혹하여 그에게 복수하려 했으나 이런 거대한 음모(?)는 제마넥이 헬레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젊고 멋진 여친을 대동하고 나온 데서 무너져버린다. 그의 복수극이 농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모파상의 '목걸이'에서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하던 그 반전과 맞먹는 허탈감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루드빅에게 이용당했음을 안 헬레나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진통제가 아닌 변비약을 먹고 화장실에서 벌이는 처절한 사투는 농담을 넘어 하나의 코미디를 연출한다.

 

웃어넘겨야 할 말 한마디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 날아오고, 가장 비장하고 진지해야 할 부분은 농담처럼 가벼워지는 아이러니한 이야기. 이거야 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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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내가 당에서 축출당했던 그 사건을 불가피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그것이 아득히 멀고 너무도 문학적이 이야기로만 비추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의 물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시대들 사이의 차이들마저 다 씻어가 버리는데, 하물며 보잘것 없는 두 개인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쉽게 씻어가겠는가. -p378-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 (자동 보도는 멈추지 않고 계쏙 앞으로 움직인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얀이 아닌 다른 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넥이 아닌 다른 제마넥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p396-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p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