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최재천 교수가 자신이 추천하는 책을 마치 식탁에 음식을 차려 놓듯 하나하나 꺼내 선보이고 있다.

주로 생명에 대한 과학서적이지만 친절한 책소개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술술 읽어내릴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환경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저자가 인용한 시애틀 추장의 말이 와닿는다.

"우리는 단지 그물을 이루는 하나의 그물코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 생명의 그물에 저지르는 일은 곧 우리 자신에게 저지르는 일입니다.(p237)"

박경리 선생님이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연의 이자로만 삶을 꾸려야 한다(p239)"라고 한 말은 더욱 크게 와 닿는다.

 

최재천 교수는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을 '통섭'이라고 칭하고 이를 강조하고 있다.

나는 '문과생', 너는 '이과생' , 이렇게 선을 그어 놓고 그 선 안에서만 안도감을 갖도록 교육받아온 우리 세대에게 참 생소하기도 하고, 또 하나의 짐을 지워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묵직하기도 하다.

 

전에 읽은 '생각의 탄생'이란 책에서도 과학과 예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 통합교육 이야기를 듣고 내가 먼저 떠올린 인물이 바로 최재천 교수였는데, 아니나다를까 이분은 이미 '통섭'을 부르짖고 있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란 책을 소개하며 "과학도 결국은 역사학이다. 진화생물학은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는 인문학적 역사학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긴 생명의 역사를 다루는 학문이고, 대폭발 (big bang)이론과 팽창이론 등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논한다."(p346) 라고 말한다.

 

'통섭'이란 말이 또 하나의 숙제를 던져 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 이웃집을 기웃거려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남의 집에 내가 모르는 흥미진진한 무언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저자가 서두에서 풀어놓은 '독서'에 대한 조언도 새겨둘만하다.

"...하지만 취미로 하는 독서가 진정 우리 삶에 어떤 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조금 공허해진다.

....나는 독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훨씬 가치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었는데 술술 읽힐 리는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 한 권을 뗐는데 도대체 뭘 읽었는지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기왕에읽기 시작한 그 분야의 책을 두 권, 세 권째 읽을 무렵이면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차츰 내 지식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최재천 세프님이 푸짐하게 차려준 식탁에서 이제 나는 하나하나 맛보고 즐기고 소화시키는 일만 남았다.

군침 넘어가는 책들이 많은데.. 어느것부터맛볼지...

일단 저자가 이 책을 읽고 인생관이 바뀌었다는 <이기적 유전자>를 빌려다 놓았다.

 

<내가 찜해놓은 책들>

- 젊음의 탄생 (이어령)

- 동물의 건축술 (KBS 동물의 건축술 제작팀)

- 개미제국의 발견 (최재천)

-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 연애 (제크리 밀러)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밀 브라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