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을 아직 읽기 전이다. 도서관에서 소장자료 검색중에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을 보고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의 오타인줄 알았다. 아니더라. 즐거움이 먼저였고, 그 다음이 괴로움이었다. (인생도 그러하네. 즐거움이 먼저라네. 개똥철학)

처음 만난 시, '앞날'과 그에 대한 해석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앞날

이성복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 곁에서 당신이 멀어져가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입니다 한껏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붙잡지요" 나는 당신이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충분히 문학적이지 않은 나는,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붙잡지요"에서 고개 갸우뚱한다. 아, 팔도 다리도 없어? 엥? 좀, 무섭네. 당신이 내 곁에 계셔도 불안하고, 당신을 떠나야하면서도 보내드리지 못한다 한다. 같이 있어도, 떨어져도 안 되는 사이. 그런 사이에 있다. 그런 사랑에 처해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사랑은 히스테리와 강박증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을 때에만 가능한 겁니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에 자신을 완전히 맞추려 하지 말고, 동시에 자신의 욕망에만 매몰되지도 않아야 합니다. 같은 말이지만 우리는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동시에 긍정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사랑이란 위태로운 감정에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법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위태로운 줄타기에 숙달되지 않는다면 남성은 강박증 쪽으로, 여성은 히스테리 쪽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 노력해야만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와 타자 사이에서 아찔한 균형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42p)

사랑이라는 위태로운 줄타기에 숙달되지 않은 경우, 남성은 강박증, 즉 여성을 자기 욕망의 '대상'으로만 인식할 가능성이 있고, 여성은 히스테리, 즉, 상대방 남성이 욕망하는 대상, 즉 '대상 a'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 타자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말고, 동시에 자신의 욕망에만 매몰되지도 말아야한다고 말한다. 이는 이 세상 모든 사랑에 대한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불같이 뜨거운 연인간의 사랑, 모든 것을 주고 싶은 자녀에 대한 사랑, 이 세상에서 날 가장 귀히 보시는 부모님의 사랑,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은 친구간의 사랑, 이 모든 사랑이 정말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와 타자 사이에 아찔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너'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줄타기 맞구만. 나와 타자 사이의 아찔한 균형. 어디, 균형 한 번 잡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