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단편 [새크리파이스]와 [포테이토칩]에 등장하는 구로사와로 인해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는 생각이 가시긴 했지만 역시 이사카 고타로의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만큼의 유쾌함은 없었다. 빈집털이범인 구로사와를 보면서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내용이 연상되긴 했지만 구로사와가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에 쓸데없는 관심을 보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빈집털이범 주제에 스스로 탐정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자신이 추리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며 타인의 일에 나서는 것이 조금은 인간적으로 보인다고 해두자. 정말 쓸데없이 정이 많긴 하지만.  

다른 빈집털이범 이마무라 역시 괴짜이긴 마찬가지, 남의 집에 들어가서 듣게 된 자동응답으로 한 여자를 구하게 되었으니 쓸데없이 타인의 사정에 관심이 많기는 구로사와 못지 않은 캐릭터다. 덕분에 오니시를 구하고 현재 애인으로 잘 지내고 있긴 하지만 뛰어내려 죽겠다는 그녀를 잡아놓기 위해 "기린을 타고 그쪽으로 간다"는 말로 설득하다니, 참 웃기지 않은가. 뭐, 나도 정말 기린을 타고 오려나 호기심에 기다려 보긴 할 것 같다.

이 단편들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타인의 일에 나서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만 스스로 세운 가설이 옳은지 땅까지 파보는 단편 [동물원의 엔진]을 읽다보면 엉뚱하게 세운 가설이 전혀 근거 없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단편 [동물원의 엔진]에서 팀버 늑대 한 마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말 땅에 묻힌 것이 팀버 늑대가 아닐까. 단편속에서 혼자 독백을 하는 글이 나가사와의 마음을 보여준 글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팀버 늑대의 시각으로 쓰여진 글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가와라자키 일행들의 추리를 좀 더 관심있게 들어보게 된다.

몇 십년의 세월동안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 단편 [피쉬스토리], 누구와 누구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글을 찾아볼 수 없지만 한 권의 책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등장으로 마음까지 따뜻해지고 단편 [포테이토칩]을 읽고 나면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다. 울면서 먹는 포테이토칩은 어떤 맛일까. 아니, 어떤 맛이라도 상관없겠지. 가슴앓이를 해 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네 편의 단편들이 어떤 맛을 가지고 있든 가볍게 읽어버릴 소설들은 아니다.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게 하지 않고 여운이 오래 남을 수 있는 책이라면 오랜시간 함께 해도 좋지 않을까. 비록 빈집털이범들의 행동에 전혀 현실감을 느낄 수 없더라도 그 속에 담겨진 진심이 보인다면 그것으로 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