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3월 5일 17개월 딸을 포함한 온 가족이 인도네시아로 출국 예정이다.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모르는 여정, 설레기도 하지만, 17개월 밖에 안 된 딸아이가 걱정이 된다.

적응은 잘 할지, 특히 이제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딸이 갑자기 인도네시아어에 영어까지 들어오면, 언어와 인지면에서 혼란스러운 건 아닌지.

애들은 말을 금방 배운다지만, 한꺼번에 세가지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이 아이의 언어에 그리고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고 걱정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너무 많은 걱정을 한다며, 오히려 어릴수록 더 잘 배우니 한꺼번에 삼개국어 하고 좋은 거 아니냐며 배부른 고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 인생 서른 한해 중 고작 6년 외국에 살았으나, 그 6년이 내 언어생활에 그리고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현재도 미치고 있는지 경험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중언어의 장점 뿐 아니라 두드러지는 단점도 경험하고 있는 관계로 딸아이 앞에 펼쳐질 앞날이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았었다.

영어는 한국어의 직역이 아닌 관계로 물론 두 가지 언어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가 유연해지고 상상력, 창의성에 많은 영향을 주며, 언어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세상을 어렸을 때 경험한 만큼 시야가 넓어지는 장점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필수교육과정 내내 문학책이나 국어책의 시를 보면서 글자는 읽고 있지만 도대체 뭔 뜻인지 잘 모르겠었던 기억들, 대학교 성적표를 보면, 영어로 들은 과목이나 전공은 죄다 A지만, 한국어로 들은 교양 과목 중 특히 한문어...? 한자어...?가 많이 나와서 조사 빼고는 거의 다 이게 뭔말이야 하게 하는 과목들(예; 경제와 사회, 청년심리학, 경영과 사회 등등)은 죄다 C를 깔았던 이유는 내가 공부를 안해서였을까.

정말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들으려고 해도 죄다 암호로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모국어만 잘 하는 사람보다 두가지 언어로 나눠지다 보니, 둘다 대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등으로 딸아이에게 펼쳐질 이중언어의 미래가 그닥 장밋빛으로 보이진 않았다.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주변에 전문가는 없고해서 책을 찾아봤다.

이 책 외에도 다른 책을 한권 더 봤는데, 그 책은 보다가 중간에서 덮었다.

물론 이런이런 단점도 있지만, 그래도 장점이 훨씬 훨씬 많다.

그러니 이중언어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훨씬 낫다.

뭐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책이어서 내 궁금증을 하나도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은 현실적이고,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알고 있으며, 게다가 말을 갓 배우는 영유아 관련 궁금증까지 모두 해소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단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인도네시아를 가기 전, 일단 모국어만 고수하고 있던 내가 (심지어 원서 책도 한번도 안 보여줬는데) 갑자기 인도네시아 출국을 대비하여 영어를 준비시켜줘야 하는 건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딸아이에게 대화를 해줘야 하는 건지, 모든 사물을 두 가지 언어로 가르쳐줘야 하는 건지, 내가 딸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언어생활이 한결 덜 머리아프고 수월해지는 건지 궁금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그냥 내가 하던대로 일단은 모국어만 고수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안 그래도 언어 배우느라 고생 중인 영유아에게는 갑자기 엄마가 다른 언어로 들이대기 시작하는게 (안 그래도 환경도 갑자기 낯설어졌는데) 엄청난 추가적인 스트레스일 수 있다는 거다.

다만,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덜 큰 관계로 추정) 해당 환경의 다수언어를 금방 배우기 마련이라서, 영유아를 위해 다수언어 교육을 집에서 따로 시켜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집에서 갑자기 다수언어를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해당 환경에 더 잘 적응한 아이들의 경우, 다수언어를 부모보다 더 잘하기 때문에, 부모의 권위 상실이 우려되는 등, 집에서는 소수언어(즉, 한국어)를 계속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수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소수언어의 실력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나는 한국에 사는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서 영어 실력이 줄어드는 게 매우 스트레스였었다.

그런데 그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체류하다 보면, 자신의 영어 실력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니면, 교과서적인 영어로 탈바꿈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즉, 두가지 언어를 fluent하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도 살면서 이걸 많이 느꼈다.

영어 책을 좀 봤다 싶거나, 영어로 된 드라마, 영화를 좀 자주 봤거나, 아니면 아예 영어권에 나가서 체류하고 있는 경우, 한국어 실력이 점점 줄어들고, 한국어를 하게 되면, 영어식으로 말하고 있는 경우가 자주 있으며, 생각도 영어로 하게 되고, 꿈도 영어로 꾸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어권에 체류하고 있어도 한국 사람들과 더 많이 대화를 나누거나, 한국 책을 자주 보거나,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하면 영어 실력이 줄기도 한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되도록이면 외국 친구들을 사귀라는 것이다.)

 

갑자기 외국에 나가게 된 가족들, 특히 영유아 자녀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 외에도 아이에게 영어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궁금한데 뭔가 지침서가 있으면 한다거나, 외국에 체류 중에 아이를 낳게 된 경우 등, 이 책은 광범위하게 널리 활용될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