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참 재미있다. 하나하나씩 읽을 때는 별개의 이야기인것만 같지만, 여기저기서 내용들이 쌓여가다보면 그 내용들끼리 연결고리가 생기고, 고리를 잇는 선이 많이 생기면 이번에는 반대로 빠진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는 것처럼. 그레이트 게임에 나오는 19세기의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영국과 러시아, 그리고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과 지방 토후들의 이야기는, 시대상으로 보면 르네 그루세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와 이어지고, 공간상으로 보면 뜬금없게도 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와 이어진다 - 다른 블로그에서 읽은 체첸 독립사와도 이어지고. 마치 직소퍼즐의 빈 부분이 끼워지는 이런 느낌이야말로, 역사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 오스만 투르크의 쇠퇴, 알렉산드르 황제와 나폴레옹의 전쟁, 반대쪽의 영국의 인도 점령과 청나라의 융성과 몰락이라는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런 잘 알려진 공간들 한복판에서 사막과 산맥으로 구분지어졌던 있던 중앙아시아의 이야기는 칭기즈칸과 네 개의 한국, 그리고 티무르 이후로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우리가 어렴풋이 들어봤던 중앙아시아의 한국인 강제이주의 시기까지 잊혀져 있었다. 저자인 피터 홉커크는 이 책을 통해 현재는 '-스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뜻 그대로의 여러 '땅' 들이 제국주의 세계사에 편입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이야기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참패한 시점에서 시작된다. 프랑스의 위협에서 한숨돌린 유럽국가들은 팽창을 시작하고, 그 중에서 이미 한 세기도 전에 시베리아를 넘어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까지 다다랐던 러시아는 이번엔 남쪽으로 내려와 인도와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자연히 동인도회사를 거점으로 인도를 차지하고 있던 영국 역시도 이에 대응하여 주변의 세력들을 하나하나씩 편입해 인도와 러시아 사이에 최대한 완충지대를 만들려 들고. 그렇게 한 세기 가까이 두 강대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지도를 만들고 길을 내면서 양국의 경계선을 좁혀들어가고, 그 와중에서 여러 모험가들과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정말 목숨을 희생하기도 하면서 '그레이트 게임'을 주도한다.

 

   . 중앙아시아에 있던 여러 칸 국들 역시도 두 강대국을 맞아 때로는 외교전으로, 혹은 공세를 취하면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러시아는 체르시아-다게스탄에서 산지 민족에게 완패를 당하고, 중앙아시아의 길목 중 하나인 히바에 대한 진군에서 두 번이나 실패한다. 영국 역시도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5천 병력과 1만명이 넘는 민간인이 몰살하는 대참사를 경험하는 등, 세계 각지에서 기세좋게 뻗어나가던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앙아시아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한 채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소모하고 나서야 간신히 카스피해에서 티베트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확장을 마무리짓는다. 

 

   . 하지만 당장 인터넷에서 '아프가니스탄' 한 단어만 쳐봐도 알 수 있듯이, 그 영향력은 그들이 쏟아부은 100년조차도 가지 못했다. 인도를 지키기 위해 중앙아시아에 손을 뻗었던 영국은 그 과실을 맛보지도 못한 채 세계대전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는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인도에서조차 조용히 물러났고, 최후의 승자인 줄 알았던 러시아 역시 아프가니스탄과의 진흙탕 싸움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철군했고 체첸과의 게릴라전 역시 끝이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테러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뒤늦게 이 지역에 뛰어든 미국 역시도 탈레반과 유령을 상대하는 듯한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고 - 그렇게 백 년 전 중앙아시아를 놓고 벌어졌던 두 제국주의국가의 진출과 지역민들의 항쟁은, 참가자와 시간대만 바뀐 채로 오늘날의 우리와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