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덮고 '로즈 가든'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비록 로즈 가든이라는 이름의 단편집으로 나온 건 한참 후지만, 실제로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와 뒤이어 나온 '천사에게 버림 받은 밤' 사이에 나온 단편들이기 때문에 시기상으로 보면 대충 맞아떨어지는 셈. 전작에서는 아직 탐정사무소를 이어받을 생각이 없었던 미로는 이 단편집에서는 탐정이 되어 가끔 옆집에 사는 '도모'라는 남자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전작에서 옆집에 살던 외국인 아가씨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인 젠조의 조언을 받기도 하면서 여전히 신주쿠 2초메의 빌라에서 지내고 있다. 그런 미로의 탐정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세 편, 그리고 미로의 자살한 남편인 히로오의 이야기가 한 편 실려있다.

 

   . 표제작인 로즈 가든이 히로오의 이야기이다. 과거에 대한 히로오의 독백과 인도네시아에서의 히로오의 현재모습이 엇갈리며 진행되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전작에서 그저 미로의 입을 빌려'온화하고 착했던 남편'으로 묘사했던 히로오의 모습에 다른색을 칠해나간다. 얼굴에 흩날리는 비에서 히로오는 좀 더 자주적이고 독자적으로 살고 싶다는 미로에게 버림받고 홀로 인도네시아로 떠나 외로움과 기다림에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헤어지자는 미로의 편지에 "기다리는 일 뿐만 아니라 사랑마저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네.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이제 당신을 증오해..." 라는 답신을 마지막으로 자살한 그저 평범하고 지쳐 보이는 남자.

 

   . 하지만 로즈가든에서 히로오는 여고생과 원조교제를 하면서 '미로와의 그물은 내가 끊어버렸다. 우리의 삶은 끝났다. 시작도 내가 했고 끝도 내가 냈다.'고 이야기하고, 자카르타로 떠날 때 역시 스스로 미로를 버리고 혼자 떠나는 모습을 보인다. 학창시절 미로의 매력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미로의 유혹에 끌려 적극적으로 미로를 탐하는 모습에서도 '온화하고 착했다'는 히로오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고. 그런 전혀 다른 히로오의 모습과 함께, 두 소설을 통해 읽는 사람은 미로와 히로오가 그저 각각의 회상 속에서 '상대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았어.' 하며 평행선을 그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둘의 속내를 어떻게 꿰어맞춰야 이 끝없이 늘어진 것만 같은 선이 이어지게 되는 것일까.

 

 

   . 나머지 세 편에서 미로는 아파트의 유령소동, 술집의 여자를 쫓아다니던 남자가 살해당한 사건, 전철에 치여 죽은 딸아 SM클럽의 에이스라는 것을 안 아버지의 의뢰를 받아 딸의 행적을 찾아다니는 일들을 차례차례 맡는다. 어느 것 하나 깔끔하지 않고 악의와 뒤틀릴대로 뒤틀린 욕망으로 악취를 풍기는 사건이지만 미로는 눈썹 하나 찌뿌리지 않고 끈기있게 사건을 뒤쫓아 엉켜버린 사실을 풀어 헤쳐 놓는다. 물론 그런다고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고,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저 밝혀진 사실만이 풀어 헤쳐진 채로 여전히 각각의 악취를 뿜고 있을 뿐. 그렇게 이야기를 읽는 내내 미로, 그리고 모두가 아무 구원도 변화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사실의 더미만을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에 진저리가 쳐져서, 과연 이 끝에서 작가가 준비해놓은 것은 무엇일지 - 미로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다크'를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