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 비어있던 스키장이 어느 덧 선수와 관객들로 가득찰 때까지 첫장부터 마지막 장을 단숨에 읽어내려간다. 막히는 부분도 없고, 다시 읽어야 하는 부분도 없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예상했던 그대로의 이야기. 스키장에서의 이야기답게 속도감도 있고, 시종일관 글의 밸런스도 무난하고, 내놓은 복선도 전부 남김없이 회수해간다. 언제나 그렇듯 러브라인도 두어 개 넣어주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부족한 부분도 남는 부분도 없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권선징악 스토리로 깔끔하게 마무리. 잘 팔릴만한 모든 공식을 만족시키는 이런 소설이 안 팔릴리가 있나. 너무 당연해보여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이 팔렸다는 문구가 사족으로 보일 정도인데.

 

   .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은 통속소설이라는 확실한 시각을 가지고, 그 통속소설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어보는 작가다. 결국 추리소설의 기반은 대중에게 있으며 대중이 읽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 그래서 그는 이슈에 따라 사회문제를 언급하고, 순애보를 통해 독자를 울리고, 새로운 과학기술을 통해 독자를 감탄시킨다. 쉽고 평이한 문장과 명쾌하고 단선적인 스토리 진행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수요가 생기면 언제든지 영상화할 수 있는 글로써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백은의 잭 역시도 이런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식'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소설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사람들에게 빠른 속도로 팔리고 읽혀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의 호불호나 평가는 일단 접어두고, 같은 겨울산의 이야기라도 빽빽한 텍스트에 압도된 채 우직하게 다카무라 가오루의 '마크스의 산'을 읽어나갈 독자보다 부담없이 '백은의 잭'을 집어들고 휙휙 읽어나갈 독자가 훨씬 많다는 거. 뭐 당연하잖아. 별 수 없지. :)

 

   . 그의 책을 읽은 다음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떤 작가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책이었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가 내는 책인만큼 다음에도 여전히 그럴테고. 과연 그가 내놓을 또다른 소재가 어떤 것일지, 끊임없이 껍질을 바꾸는 그의 시도를 다음번에는 어떤 결과로 마주하게 될 지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