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것이지 응석받이로 만드는 게 아냐. 따라서 부모는 자식에게 얼마큼 독립심을 허용할지 결정해야 해. 자네 부부가 통제해야 한다는 소리지. 결국 자식에 관한 모든 걸 알아야 한단 말이야. 이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단체가 아니라 가족이라구. 세부적인 문제까지 하나하나 간섭해선 안 되겠지만,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해. 아는 게 힘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정부가 자네 부부의 일에 개입하는 경우에는 자네 부부에게 가장 좋은 게 뭔지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될 여지가 많지. 하지만 부모는 안 그렇잖아? 그리고 자네 부부는 둘 다 똑똑한데 문제 될 게 뭔가?"

- p.50. 마이크, 티아 부부와 모의 대화 중.

. 사실 나는 서양미스터리(고전물은 제외하고)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일단 애거서 크리스티 이후로는 트릭을 중시하는 본격류가 하드보일드나 스릴러, 혹은 팩션 같은 장르들에 비해 확연히 퇴보했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는 추격전이나 치열한 법정공방, 수사물은 많지만 그에 비해 범인과 탐정과의 정적인 추리를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 첫번째 이유. 물론 일본미스터리에도 수사물은 많지만, 같은 수사물이라고 해도 영미쪽은 과학수사나 액션 쪽으로 접근하는게 보통이라 일본 수사물의 특징인 오밀조밀한 심리묘사나 감성적인 측면을 찾아보기가 힘든 감도 있고. 뭐랄까. 어설프게나마 표현하자면 영미추리물은 재미있게 꾸며진 과학책을 읽는 느낌이 난다고 해야하려나. 결국 도저히 취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끙-_-;

. 더군다나 그동안 읽어왔던 서양미스터리들은 어디까지나 잘 꾸며진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긴 하지만 막상 소설 속에 그려진 인물에 이입되거나 사건이 와닿는 일이 그다지 없다는 점도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 물론 소설은 소설일 뿐이니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사회 분위기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들에게는 절실하게 와닿는 문제가 내게는 생경한 것일 가능성이 더 크긴 하다. 뭐 어쨌든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골라가면서 읽어도 도저히 못따라잡을 지경인데, 굳이 아쉬움을 참아가면서까지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는 노릇이니. 그런 정도의 이유다.

.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서양미스터리에 대한 편견을 그렇게 깨지는 못한다. 수사부분은 딱딱하고, 범행은 눈살을 찌뿌리게 할 정도로 잔혹하고, 범인은 으례 그렇듯 이상하고 순도 100%의 나쁜 놈(-_-;)이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중간중간 넘겨가면서까지 끝까지 읽은 이유는 단 하나. 맨 위에 인용한 저 대화의 결론이 어떻게 나는지 궁금해서였다. 과연 작가가 부모가 마음을 닫은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이를 얼마나 설득력있게 풀어나가고 읽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비록 취향은 여전히 잘 맞지 않았지만, 작가가 이야기 속에서 그려내는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가 너무도 실감나게 와닿았다는 점. 이정도면 시작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 뭐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은 참 어렵고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선택하는 연인이나 부부끼리도 충돌하는데,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는 부모자식간에야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교육과 가족내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 방법을 통해 그렇게나 고민하며 이야기하는 것일테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고, 내가 거는 농담에 대꾸하지 않고 - 그 뿐만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주변이 '내가 보기에' 점점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을 때, 어디까지 내 아이를 믿어주고 어디부터 어떻게 끼어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할런 코벤은 부모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도 정말 실감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그게 이 소설이 가진 유일하지만 다른 단점들을 기꺼이 감수하게 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장점이자 힘이고. 결국 정면대결을 능숙한 솜씨로 슬쩍 피한 게 개인적으로 아쉽기는 하지만, 할런 코벤은 소설가이지 교육전문가나 아동상담가는 아니기에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게 애시당초 욕심이었을테다. 뭐 이 정도면 작가로서는 충분히 하고도 남은 거 아닐까. ^^;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다였다.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면 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너무나 무작위적이어서 그보다 더한 것은 하지 못할 수도 있다 - 우리가 가진 모든 걸 내세워 최선의 노력을 할 수는 있지만, 그걸 마음대로 조종하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 p.514. 뜬금없는 작가의 시점에서. 그건 그렇지.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