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만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슈만에 대해 거의 모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대를 갔지만 결국에는 음대로 이전했다는거나,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브람스의 데뷔를 도왔지만 정작 본인은 손가락을 쓰지 못하게 되고, 무엇보다 정신이상까지 겪으면서 결국은 투신시도를 거쳐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신변잡기 식의 일화 정도는 알지만, 문제는 그의 음악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거. 책과 달리 음악 쪽에는 거부감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큰 관심도 없고, 그렇다고 음악에 해박한 주변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결국 여기저기서 어깨너머로 듣는 음악만 계속 듣게 된다. 하지만 바흐나 모차르트라면 모를까, 슈만을 어깨너머로 듣는다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계속 낯설게 남아있었다.

 

   . 사실 당연한 얘기지만, 전자책이 아닌 이상에야 당연히 활자로 된 책은 독자에게 어떤 음악도 들려줄 수 없고, 서문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슈만의 음악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유리가면에 가끔 나왔던 '트로이메라이'를 제외하고는 그의 음악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그러므로 이 책은 미스터리의 완성도와 함께 오직 글자만을 가지고 독자에게 슈만의 음악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 상당히 어려운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게 된 셈인데, 오쿠이즈미 히카루는 이에 대해 과감하게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 맨 처음 부분의 절단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재생했다는 편지 속의 짤막한 메세지를 제외하고는 글은 그 어떤 미스터리 요소도 배제한 채 오로지 슈만과 그의 음악에 대해서만 줄기차게 이야기한다. 페이지로 따지면 16페이지 중반부터 136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책의 전반부 전체를 할애해 다른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이 두 소년의 음악에 대한 토론을 중심으로 오로지 슈만에 대해서만 써내려간다는 모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음악소설도 아니고, 어찌됐든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 대부분은 미스터리라고만 생각하고 책을 집어들었을텐데, 실제로 독자가 만나는 건 낯선 이름들과 용어들, 음악에 대한 표현들과 음악론에 대한 논쟁이니 무모하리만큼 대담한 구성인 셈이다. 실제로도 다른 서평들을 읽어봐도 이 부분에서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고.

 

   . 어찌됐든 일단 내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미스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후반부보다 오히려 전반부 내내 이어지는 이야기가 훨씬 좋았다. 특별히 어렵지 않고 꽤 흔하고 일반적인 트릭을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엎치락뒤치락하게 만들겠다는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엉성하다는 느낌이 들고, 군데군데 나름 깔아놓은 복선들은 이야기가 다 밝혀진 후에도 여전히 애매모호하게 남아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필력은 분명 최상급이고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입력도 뛰어나서 분명 낯설고 어려운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몰입해서 읽어내려 갈 수 있었는데, 트릭이나 사건이 풀리는 과정만큼은 이상하게 서툴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툭툭 걸리는 느낌이다. 보통은 그 반대의 경우(특히 신본격류 작가군들 중에서는 이런 경우가 좀 있다)가 많이 보이는데,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서 되려 어떤 작가인지 관심이 간다. 덕분에 같은 작가의 '돌의 내력'도 일단 읽어야 하는 리스트에 추가. -_-;

 

   . 뭐랄까. 상당히 신기한(?) 책이다. 분명 책 소개를 봐도 미스터리 장르에 속하는 책인데도 막상 책을 읽으면 '초심자를 위한 슈만 이야기' 정도의 부제를 붙여도 될 만큼 음악에 대한 부분이 더 많고, 또 그 부분이 훨씬 재미있고 공들여 써져 있다. 실제로 책을 다 읽은 지금 내게 사건의 진상보다 더 궁금한 것은, 과연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2번 사단조 1악장에 쓰여진 '최대한 빠르게 -> 보다 빠르게 -> 좀 더 빠르게'의 기호를 연주하는 방법이니까. :)

 

 

   p.s.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시공사 검은 숲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