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고향 마을 사방산 앞을 도도하게 흘러가는 남한강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필라델피아는 제게 있어서 큰 물을 닮은 영화였던 거지요. 

시대와 사회를 뒤흔들었던-지금도 자유롭지 못합니다만- 에이즈라는 질병과, 그 질병을 일으킨다고 여겨졌던 동성애라는 그 거대한 소재를 어쩌면 이렇게 유연하게 담아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어찌 보면 강이 가볍게 출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비슷한 리듬을 탑니다. 솟구쳤다가, 다시 내려갔다가,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죠. 

이 부드러운 리듬은 영화 내내 출렁입니다. 심지어는 최고의 클라이막스에 이를 때도, 또 그것이 지나갈 때도 조금 크게 인 물결에 한 번 강이 몸을 뒤틀었다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수면 위로 보이는 흐름이 잔잔해 보인다고 해도 강이 품어내고 흐르게 하는 물이, 그것들이 흐르는 힘이 얼마나 센지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 자연을 눈 앞에 두었을 때의 막막함과 경외감. 영화는 흘러가는 내내 그 힘을 의식하게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에이즈와 동성애라는 파격적이고도 어려운 내용을 주제가 아닌 소재로 삼아 인간을 그려 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이 에이즈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에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고 다른 이들이 그의 병을 이유로 그의 당연한 권리와 자격을 박탈했을 때, 한 인간으로서 굴복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그는 동성애로 인해 에이즈에 걸린 환자, 혹은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가 아닌 보통의 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익숙치 않아 처음에는 실눈을 뜨고 보게 되던 주인공과 동성의 연인이 함께 있는 장면도 마지막에는 눈물이 나게 합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간인 것을요.

그 크고 거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와 사건을 이만큼 잔잔하고 고요하게 담아낼 수 있다니.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흐름이 더 생생해지다니. 
어쩌면 외유내강이라는 것이 이런 걸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이로웠던 역설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p.s 

처음 필라델피아라는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음악이 있습니다. 
Neil Young 의 Philadelphia
지금도 떠올리면 마음이 찡한 노래. 
그러고 보니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 영화와 인연을 맺어왔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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