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자 되기...'해님'처럼

 

사교육에 몸담고 있지만 늘 사교육 없는 세상을 꿈꾼다. 끼니도 거른 체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무표정과 수심이다.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법도 한데 너무 이른 나이부터 부모가 정해놓은 스케줄에 끌려 다니다보니 짜증내거나 화내는 방법조차 모르는 것 같다. 마음을 열고 세상(아이들의 세상이란 학교, 학원, 집 이렇게 단출하기 짝이 없다)과 마주하면 무수한 상처가 몰려온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마치 감정 없는 로봇처럼 컨베이어벨트 마냥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매일의 학원 순례에 나선다. 과도한 숙제에 수심 짙은 얼굴로 맞서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다. 힘들다고 몸부림쳐도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라는 것을 알기에, 합리적으로 짜증내거나 화낼 줄 모르기에 그들의 다음 단계 반항은 너무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막을 내린다. 그들의 삶과 함께...

 

교육평론가 '이범'은 공부의 3요소를 동기, 기술, 노력이라 했다. "초등학교 때는 독서와 복습을 통해 노력하는 습관을 기른다. 중학교 때는 자기주도형 학습을 통해 자신만의 공부 기술을 터득하고, 이를 통한 성취를 공부의 동기 삼아 나아간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학원에서의 선행학습을 노력으로 착각하고, 학원수업에 밀려 자기주도형 학습이 사라진지 오래다. 이러한 풍조가 만연한데에는 공교육의 책임도 크다. 학원을 통한 선행학습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대도 공교육에서는 각성의 목소리나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맨 얼굴이야 자본축적이라지만, 그래서 공교육이라는 타이틀을 학교에 부여했으나 어느새 학교는 사교육에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자식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지만 한국은 특히 더 심한 것 같다. 높은 교육열은 그 자체로만 보면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풍조는 높은 교육열과는 달리 미숙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포인트다. 부모의 기준에 맞춰 자녀를 교육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가진 씨앗(재능)은 저마다 다른데 모두 특정한 열매로 키우려고만 하니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부모의 기준이라는 것도 부모가 치열한 탐구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기에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받는 교육도 비슷하고, 아이들이 선호하는 대학이나 직업도 비슷비슷한 것이다.

 

교육이란 저마다 가진 씨앗을 고유의 모습으로 길러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교사는 어디까지나 수동자의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씨앗을 길러야 할 사람은 본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씨앗이 어떤 씨앗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스스로 탐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갖게 해주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믿음과 아무리 훌륭한 기준이라도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으려는(혹은 사회의 기준을)인내력이 없다면 무의미하다. 그러니 수동자의 위치를 지키며 늘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한다.

 

설국열차의 엔진처럼 멈출 줄 모르는 사교육 열풍과 역할을 망각한 공교육의 현주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어른들과 자신이 가진 씨앗이 어떤 씨앗인지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조차 모르는 우리 아이들. 갖가지 열매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랄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해님'에게서 교육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모든10대는엘리트가될권리가있다, 송재희, 학원, 학교,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