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햇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지난 8월 26일 금요일, 망원역 근처에 위치한 에코브릿지 카페에서 <어쨌거나, 뉴욕>의 작가이자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 중인 이숙명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렸다. 햇빛을 피해 카페의 지하 1층에 위치한 행사장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조명과 팝송이 기분 좋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날 행사는 10명의 독자가 입을 맞춰 “이숙명 작가님!” 하고 외치며 유쾌하게 시작됐다. 짧은 커트 머리를 한 이숙명 작가는 독자들의 웃음과 박수 속에 등장했다. 그 동안 봐왔던 사진 탓에 보이시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녀는 소녀 느낌을 물씬 풍겼다.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독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학생에서부터 직장인까지 자신을 만나러 온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을 어떻게 만족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 후 본격적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독자들 모두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이숙명 작가와의 만남을 알리는 배너


↑ 행사시작을 기다리는 독자들


↑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와 독자들의 모습

이숙명 작가는 유명 패션잡지의 패션 에디터로 일했지만, 일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떠났다. 그리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회사선배로부터 “사회생활은 이숙명만큼만 해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던 그녀에게 선배는 “그만둘 거니?”라고 물었다. 이에 그녀는 무심코 “네”라고 대답한 것을 계기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쉬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회사 주변에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쉬고 싶다면 여행을 가야 해요. 그래서 떠난 곳이 뉴욕이었습니다.” 애초에 가려고 한 런던이 비자 문제로 거절되면서 그녀는 뉴욕행을 결정하게 됐다. 어학연수 삼아 놀기 좋은 곳. 그것이 뉴욕 선택의 이유였다.

뉴요커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뉴욕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다. 자유롭고 화려한 도시 뉴욕. 하지만 작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뉴욕의 모습은 실제와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패셔너블 하지 않아요. 패셔너블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입니다. 대개 명품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다녀요. 오히려 서울에 오면, 왜 이렇게 옷을 잘 입냐며 놀라고는 하죠. 모두 <섹스 앤 더 시티>가 남긴 환상이에요.”

그녀는 이어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패션 에디터에 대해 환상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패션에디터 하면, 엣지 있는 김혜수를 연상하죠. 그런데 에디터들은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멋 부리지도 않아요. 글 쓰던 사람들이 사회 생활 하는 정도로 보면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옷에 대해 잘 몰랐고, 뷰티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어요. 메이크업도 패션잡지사에 들어가면서 시작했고. 패션 뷰티팀 에디터들은 저를 노다지라고 했었어요. 그들은 워낙 꾸미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제가 그들에게 노다지였던 셈이죠. 그러니까 저를 보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독자들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이숙명 작가


↑ 질문하는 독자와 진지하게 듣고 있는 이숙명 작가


↑ 강연을 진행 중인 이숙명 작가

유쾌했던 작가의 이야기가 끝나자,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패션 에디터, 프리랜서로서의 삶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던 독자들의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요약한 내용이다.

Q 9월 7일에 홀로 뉴욕여행을 떠난다. 조언을 부탁한다.

꾸민다고 하이힐을 이것저것 가져 가는데,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다. 전통 있는 도시들이 많아 길거리 전체가 볼거리이기 때문에 지도 한 장이면 걸어 다니면서 보기 좋다. 시공사에서 나온 <저스트 고 뉴욕> 책을 가져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Q 미술관은 어디를 추천하고 싶은가.

뉴욕에는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뉴뮤지엄 등 미술관들이 많다. 각각 특징이 있는데 메트로폴리탄은 너무 크고, 뉴뮤지엄은 가끔 자극적인 작품들이 보인다. 첼시 쪽에는 라이징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두는 많은 갤러리들이 있는데, 인터내셔널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그림들이 전세계에서 모이므로 일주일을 둘러봐도 모자라다. 거기에는 “네가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건 사지 마” 라는 말이 붙어있는데, 실제로 그런 작품들이 꽤 많기도 하다.

Q 떠난 것에 대해 후회가 없는가.

후회는 없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놓칠까 봐 후회한다. 하지만 다녀오면, 시야는 확실히 넓어진다. 일을 열심히 했다면, 떠난 후 돌아오더라도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풀릴 때가 있고 꼬일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에 나는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다시금 활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을 권한다.

Q 언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나.

본의 아니게 돌아오게 되었다. 언니에게서 결혼을 한다고 소환장이 날라왔다. 뉴욕은 정이 깊이 들어서 거기가 내 집인 것 같았다.

Q 원래 책을 쓸 계획이었나.

책에서도 나오지만, 뉴욕에서 집을 사기 당한 것이 억울해서 그 돈을 만회하기 위해 기획안을 냈던 것이다. 아직 만회하지는 못했다. 책을 많이 팔려면 유명해야 하더라. 패션잡지에 있으면 빨간 표지의 여성 취향의 에세이가 들어온다. 그때는 보면서 쉽게 쓰여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Q 여행을 다녀온 것이 프리랜서 생활에 영향을 주었나.

좋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면서, 문득 왜 내가 먹지 못할 열매를 위해 거름을 주고 땅을 파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 잡지 시장은 노동집약적이어서 잡지 기자 3년이면 얻는 건 속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0년 스트레스의 결과로 탈이 나서 수술까지 했다. 그래서 적게 일하고 적게 먹겠다는 마음으로 자유로움을 택했다. 일할 당시 매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 때 만났던 배우 손병호 씨는 그 때 당시 1년에 6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하더라. 차비조차 없었는데 밤하늘에 별을 봐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몇 배를 많이 받았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영화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은 하기 싫은 일은 안 한다. 한 번은 내가 “사람 사이에 의리, 책임감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살 수는 없지 않느냐” 하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누구를 위해 일을 한다 해서 그건 사람을 도와주는 게 아니다 내가 아니면 절대 안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고 얘기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4명과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다. 일주일에 삼 일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술집 매상을 올려준다. 올해는 한국 국립공원들을 여행하는 것이 목표다. 큰 프로젝트는 팀 단위로 움직이고 작은 건 개인이 한다. 만약 가정이 생기면 고정수입이 필요하니까 취직을 생각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자유를 즐기고 싶다.

Q 회사 근무를 하면서 특히 여행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였나.

매 순간, 마지못해 다녔다.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 항상 다음 달 그만둘까 다다음 달에 그만둘까 고민했다. 그러나 열심히 일했다. 에디터라는 직업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다. 그것만 하는 게 싫었다. 책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되고 그림을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되는 것이다. 회사 생활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고 이 매체를 통해 써보고 싶은 건 다 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털고 떠날 수 있었다.

Q 프리랜서로서 경제적 압박을 받지 않는가.

오히려 직장에 있을 때보다는 많이 번다. 90년대 후반 직장에서 이탈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일한만큼 보상 받지 못하면서 커리어 우먼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이다. 프리랜서는 알맞은 자신의 노동력을 조절할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다. 취재, 진행, 기업 에디터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직장생활 할 때는 이렇게 다양한 일이 있는지 몰랐다. 1~2년은 가난했으나 네트워크를 넓히다 보니 보이더라. 나가면 길이 보인다.

Q <어쨌거나, 뉴욕>의 후속 계획은 있는가.

내고 싶은데, 많이 팔려야 할 것 같다. 경험이 있는 남미 관련 책을 쓰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러려면 다시 가야 할 것 같다. 빌 브라이슨 같은 코믹 여행 작가가 꿈이다.

↑ 독자에게 사인을 하는 이숙명 작가


↑ 독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이숙명 작가


↑ 이숙명 작가가 인터파크도서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