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마라고 있죠. 위로 솟은 연두빛 뾰족 뾰족한 잎이 싱그러워 보이는.

그걸 손바닥으로 결따라 위로 죽 훑으면 향이 좋습니다.

그런데 간혹 사이에 끼인, 갈색으로 고사한 잎에 손이 닿으면 따끔 하답니다.

책을 읽으며 이 율마가 떠올랐습니다.

뭔가 흐름이 잘 흘러가는가 싶다가도 가끔 툭 툭 걸리는 문장들.

또는 중심추가 이리갔다가 저리갔다가 하는 것처럼 맥락을 잡기가 헛갈리는 관점들.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텍스트가 자꾸만 시비'를 걸어와서

가슴속에서 뭔가가 부글 부글 끓기가 여러번이었죠. 

일테면 이런 겁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루이스의 저작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생각이 어떻게 형성되고 표현 되었는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의 관심사는 루이스의 생애의 모든 면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외부세계와 내면 세계 사이의 복잡하고  

매력적인 연관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p.14  

 

그.런.데... 저자는

루이스의 내면 세계를 그 어떤 책보다 잘 표현한 <예기치 못한 기쁨>의 몰번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루이스에게 몰번 칼리지는 재앙이었다.

<예기치 못한 기쁨>은 전체 15장 가운데 세 장을 할애해 '콜'에서의 경험을 하나 하나 짚어 가며 그곳을 비난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가 생생하고 혹독한 기억들을 죽 펼쳐가는 일은 기쁨을 모색하는 전체 이야기의 진행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고통스럽고 주관적인 기억들을 이야기하는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쓴 걸까?

더구나 다른 이들(와니를 포함해)은 루이스의 기억이 왜곡되고 편협한 것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던가?

<예기치 못한 기쁨>의 이 대목을 집필하면서 루이스는 그 일을 일종의 카타르시스 행위로 보았던 것 같다.

몰번에서의 일은 필요이상으로 길게 적으면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씻어낸 게 아닐까?

하지만 이 작품을 호의적으로 읽는 독자의 눈에도 몰번에 할애된 세 장 때문에 책의 진행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역력히 보인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전체 줄거리를 흐리고 있다." p.60

 

음...호의적으로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엔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몰번에서의 사건은 그의 내면의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주 중대한 사건이었고,

그랬던 만큼 할애된 세 장의 분량은 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입장에서는 이 챕터를 통해 루이스의 책 <영광의 무게>에 실린 "멤버십"이나 "내부 패거리"를 쓴 의도와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몰번에서의 일은 그의 저작의 주된 소재가 된 '죄의 본질'을 꿰뚫는 근간이 된 사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전쟁경험보다 몰번에서의 시기에 더 큰 상처와 충격을 받은 루이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된답니다. 

 

어딘지 모르게 이렇게 추의 중심이 기우는 것 같다가도 또 어느새 중심을 다시 잘 잡곤 합니다.

중반부 루이스 저작에 대한 설명, 

(한가지 예를 들자면 당시 전시상황에서 단 것을 꽤 오랜기간 배급제로 할당했다는 사실은 나니아 연대기 속
에드먼드의 터키젤리에 대한 욕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루이스 사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나 카톨릭 신자들에게 끼친 영향등을 설명한 부분등은 참고로 할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우리가 얼굴을 찾을때까지>의 루이스가 생각한 원제가 <맨얼굴>이었다는 것, 

소크라테스 클럽이 여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는 것, 

루이스가 톨킨의 문학 작품에 대한 산파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며 소개되는 에피소드등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자료적 측면의 강점은 인정할 만 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개인적 추측의 부분은 역시 독자가 감안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루이스의 아내 "조이"에 대한 저자의 추측은 정말로 뜨악할 정도입니다. 

글쎄요...루이스의 편지글이나 <헤아려본 슬픔>에 묘사된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이해한다면

"꽃뱀"이라거나 "미국인 이혼녀의 물주 아저씨"같은 지나친 표현은 쓰지 못했을 것 같은데...

(전반부 부터 미심쩍던 저자의 시각에 대한 신뢰도가 훅 떨어지는 계기가 된 지점이었습니다.)

<루이스가 메리에게> 쓴 편지에 보면 두 사람의 그리스 여행은 사형수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아침을 대접하는  

비장한 마음이 섞인 가슴저린 결단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암이 재발한 조이의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고 실지로 여행후 몇개월 지나지 않아 조이는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돈을 긁어내 호사를 누리겠다는 그런 의미와는 많이 동떨어진 것이었다는 거죠.

병을 앓고있던 중에도 의연한 모습으로 오히려 루이스를 위로했다는 얘기도 그녀의 성품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저자와 다른 견해를 짚어보자면

나니아 연대기의 삽화가, 폴린 베인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루이스가 그녀의 그림 실력을 안 좋게 말했고, 특히 사자를 잘 못그린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루이스는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를 완벽하게 시각화해 낸 삽화를 만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p.352

글쎄요, 제 생각은 그림을 좀 그릴 줄 알았던 루이스의 눈이 더 정확했다고 보여지는데요.

제가 "용의 얼굴"을 그릴 일이 있어서 베인즈의 그림을 참고해 보려고 찾았다가 깜짝 놀란적이 있거든요.

(그건 용의 얼굴이 아니라 영락없는 말의 얼굴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단언할 얘기는 아니고 견해차 정도로 짚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개인적 추측의 부분도, 그저 일어난 사실적 사건을 나열하는데 주력하고, 판단이나 추측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요리로 치자면 딱 사이드 메뉴, 즉, 참고 자료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루이스 전기로는 이 책 보다는 조지 세이어의 <루이스와 잭>이 낫고  

그보다는 역시 <예기치 못한 기쁨>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로 그의 내면 세계와 저서를 통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