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 6월 2일 읽다.

 

참으로 먹먹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억누를 수 없는 응어리가 가슴 저편에서 꿈틀거리고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 내려갔다를 반복한 한 주입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남긴 글에서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짐작해 봅니다.

 

이 책을 눈으로는 편하게 읽으면서도 맘은 무척 뒤숭숭합니다. 어찌할 수 없는 낭패감입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이 힘들었던 그 분이 영면에 든 다음날 이 책을 몇장을 넘겼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년전 어느 봄날 쓰였을 글에서 그분의 모습을 보게되는 걸까요.

날리는 섬진강 매화꽃잎에서 안타까움이 새록 싹트는 것일까요.

"사람들아! 매회꽃 아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날리는 봄날에 섬진강 강가에 서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는 보았는지.

사람사는 일이 대관절 그 무엇이기에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 몇 백년을 산다고 그리 부질없는 몸짓들을 하는지.

인간들의 탐욕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땅과 하늘, 문명의 탈을 쓴 이 야만의 시대여!

불쌍하고 불쌍하도다. 꽃피고 지는 일 한낱 봄날의 꿈이라네. 우리 세상사는 피었다가 지는 저 꽃같이 한순간이라네.

그대들이 짊어진 그 무거운 짐들. 저 매화나무 아래에 다 부려라.꽃잎 뜬 강물에 그대를 띄우고,

"매화야 매화야 섬진강에 피고 지는 매화야." 그렇게 한번 속으로 매화를 불러보라."

'오래된 마을'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산문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시골 아재의 이야기를 듣는듯 합니다.

글을 읽다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의 얼굴 생김새와 말투와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김용택 시인의 둥글고 촌스런 얼굴처럼 이 책의 글들도 둥글고 촌스럽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목가적 풍경으로 섬진강 강변 마을을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마을에 사는 오래된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묘사함으로써 현실의 느긋함이

오히려 날카로운 현실의 송곳처럼 곳곳을 찌릅니다.

"참깨를 한구덩이에 두세 개씩 넣으면 이것들이 하도 싹이 작아서 땅을 못 뚫고 나온다네.

그래서 참깨 구덩이에서는 저렇게 많은 싹이 나온당게.

여러 개를 한 구덩이에 넣어야 저것들이 힘을 합쳐 땅을 뚫고 흙을 밀어 내며 나온당게" 하십니다.

나는 놀라고 또 놀랍니다. 광화문에 모여든 촛불 생각이 났습니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나라를 들어 올리잖아요. .......

말로만 떠들고, 이론으로 무장해서 목에 핏대 세우고, 나같이 책상머리에 앉아 생태가 어쩌니,

자연이 어쩌니, 하는 것들하고는 근본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P 54~ 55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아갑니다.

김용택시인은 오랜된 마을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관객도 아닌 그저 스쳐지나는 행인 1이나 군중 속에 몇마디 추임새를 넣는 이름없는 조연입니다.

조연이 무대 밖이 아닌 무대위에서 주인공들의 그렇고 그런 행위를 관찰합니다.

하지만 같은 무대에 서있기에 주인공들에 대한 연대감과 동정심이 뭍어납니다.

오래된 마을엔 오래된 사람과 오래된 사람만이 발할 수 있는 인간의 향기가 퍼집니다.

지금 이맘 때면 섬진강 마을에는 매화나무마다 퍼런 매실이 안개를 먹고 달려있고, 이를 수확하는 손길이 바쁩니다.

몇번 가봤던 섬진강 오래된 마을들이 오래도록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