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을 소설로 만났다.  

'난설헌'은 제 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혼불문학상은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기리기 위해서 전주문화방송이 제정한 문학상이다. 그 첫번째 수상작이 바로 <난설헌>이고 그 작가의 이름이 최문희다. 혼불의 작가와 수상자의 이름마저 비슷한 것은 우연한 일이겠지만, 문학상의 취지에 걸맞는 작품이기에 더욱 기대가 가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기전에 일러두기에 "이글은 소설로, 오로지 소설로 읽혀야 한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 등의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없다. 일부 등장인물의 경우는 소설적 개연성을 위해 재구성된 허구임을 밝혀둔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나, 인물이 실존했던 인물이고 조선의 몇 안되는 여류문인이기에  이 책이 그저 픽션으로 읽히지 않는다. 난설헌 -초희가 조선시대 여성의 아픔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가는 운명의 길이 어찌 픽션으로만 읽힐 것인가.

 

조선시대 여류 문인으로 황진이, 이매창, 허난설헌, 신사임당 등이 알려져 있다. 이중 황진이와 이매창은 기생으로서 그나마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었으나 그것마저도 신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었을 것이고,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사대부의 여성으로서 그 한계가 너무도 분명한 신분이었다. 남성 중심의 조선 후기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펼칠수 있는 역량이라는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세상과 문장에 대한 지혜가 스스로은 자존감을 높일 수록 여성으로서 삶은 혼란스러워 질 뿐이다. 시집을 가면 그때부터는 또다른 가문의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름은 사라지고 무슨 가문의 무슨 씨로만 남을 뿐이다. 

 

고가라서 낮이건만 인적도 없고

뽕나무 위에서 부엉이만 우네

까칠한 바위 옷 층계에 돋고

참새가 빈 다락에 깃을 쳤다네

전에는 말과 수레 머물더니만

지금은 여우의 소굴이 되어

달관한 분의 말씀 이제 알겠소

부귀는 나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난설헌의 어머니 김씨가 딸의 야윈어깨를 얼싸안았다.  "초희야.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이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작가는 어머니 김씨을 입을 빌어 초희의 한을 위로한다. "어짜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남편의 아내가 된 것. 그것은 그녀의 운명이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져버린 꽃. 허난설헌

 

지금도 유리천정에 갖혀 있는 여성들을 보며 난설헌을 이야기로만 읽지 못하는 까닭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