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방송중에 예당아트TV라고하는 방송이 있다.

주로 클래식이나 공연을 프로그램으로 가지고 있는 방송이다.

할 일 없는 한가한 오후,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여행하고 있을때 그저 스쳐지나는 방송이다.  

말 그대로 0.5초 정도 화면만 핣고 지나가는 방송이다.

방송이름부터가 다이나믹하거나 흥미를 끌만큼 자극적이지 않을 뿐더러 내용 또한 이름만큼이나 정적이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오후 아버님댁에서 할일 없는 리모컨질을 하고 있다가 이상한 사람 하나를 봤다.

꽁지머리에 빨간 드레스 셔츠를 입고 말은 일반 방송인에 비해 빨라서 그가 프로 방송인이 아님을 대번에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은 파워포인트를 띄워가며 뭔가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0.5초를 스쳐가듯 지나려는 순간 갑자기 음악가의 이름이 들렸고 그 순간 다음 채널로 넘어갔던 리모컨을 뒤로 돌렸다. 

(사실 나는 집에 케이블 TV를 설치하지 않아 기본적인 시청료만 내고 지상파 방송만 나오는 TV를 본다.

  리모컨도 건전지가 다 되었는지 움직이지 않아 KBS1에 맞춰진채 아침 뉴스만 본다.

  TV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TV에게 미안하고 내 계좌에서 내게 묻지도 않고 빠져나갈 수 밖에 없는 시청료가 아깝다.)

 

그렇게 약장사처럼 뭐가를 떠들던 사람이 조윤범이다. 바로 이 책의 저자다.

그는 콰르텟엑스라는 현악4중단의 제1바이얼린리스트다. 그리고 이야기꾼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그리고 음악가에 대해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한다.

그의 연주실력은 음악에 귀가 뚫리지 않은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는 들을 수 있는 일반 청중의 입장에서 볼 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다.

그가 예당아트TV에서 그렇게 강의했던 내용을 모아 엮은 것이 이 책이다.

 

철학에 대해 알고 싶다면 철학자와 철학사를 보면 그 대강을 짐작할수 있을 것이고, 수학에 대해서도 수학자와 수학사를 보면 또한 큰 흐름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음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음악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음악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TV 방송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는 음악가의 연대순으로 편집하였다. 누가 형님이고 누가 아우인지 알수가 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의 흐름을 접할 수가 있다.

하이든-모짜르트-베토벤-슈베르트 누가 제일 먼저 태어났을까?

별 생각없이 그들의 이름을 들어왔고 가끔, 아주 가끔 그들의 명곡들을 들었었는데 이번에 그 순서를 정리하고 나니 음악이 다시 들리는 것 같다.  이쯤되면 또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음악은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린 만큼 느낀다.

음악가의 삶과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그의 삶이 녹아 았는 음악들.

이 책에서는 음악가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음악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안타깝다.

종이라는 매체는 음악이라는 속성을 담아내기에 너무도 한계가 있다.

음악은 소리인데 종이는 다만 시각적인 현상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윤범이 눈물이 난다고 하고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고하는 많은 음악들이 그저 문자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책이라는 도구로는 그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없어 어떤 느낌일까를 궁금해 할뿐이다.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을 TV로 보거나, 아니면 예당아트TV에서 동영상으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생생함에서 차이가 난다. (예당아트TV에 가입하면 그의 멋진 모습을 공짜로 볼 수 있다.)

어쩔수 없다. 어쩔수 없을까.

책값을 조금 더 올리더라도 CD로 각 음악가별로 한곡씩 정도라도 음악을 녹음 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얼마전에 읽은 '빅 파바로티'는 CD가 같이 붙어왔다.

 

바흐나 모짜르트, 베토벤 같은 고전음악은 그런대로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쇤베르크나 윤이상 같은 현대음악은 접하기도 어렵고 접한다해도 그 난해함에 암담할 뿐이었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다가갈수 있었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 책에서 얻은 최대의 수확이다.

현대미술과 현대음악이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이다.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새로움을 세우는 작업.

하지만 그 새로움은 세워지는 순간 벌써 새로움의 가치가 구시대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그것이 세계다.

베토벤도 그시대에서는 현대음악가였고 기존의 질서는 전복한 음악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