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유병재 농담집_블랙코미디 

저자: 유병재

출판사: 김영사

'잔혹함,부조리, 자학, 절망, 죽음 같은 어두운 소재 및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소재를 과장하거나, 익살스럽게 풍자하는 유머나무위키에서 말하는 블랙코미디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위와 더불어 장황한 설명들이 있지만 사실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단어이다.  

 

그가 말하는 블랙코미디는 다음과 같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하는 코미디그 자세한 설명을 동네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로 대신한다.

'내가 구정에 죽어야 느이들이 제사 지내기 수월할 텐디'

저 농담에 우리는 단순히 웃을 수 없고, 부정하며 울 수도 없다. 또한 무슨 소리냐며 화를 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수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도 대답없이 그저 무표정을 지켜야 하는 농담. 그가 말하는 블랙코미디의 정의를 통해 이책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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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유병재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SNL에 나왔던 그의 모습이 익숙할 것이다. 극한직업이라는 코너에 나와 방송작가의 직업적 비애를 보여주는 장면은 퍽 재밌었다. 살짝 멍청한 표정으로 감정없이 일을 하다가도 불합리한 상황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내뱉던 모습이 내게는 충격적으로 남았다. 그러면서 방송작가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코미디언으로서 다양한 예능프로에도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계속 미디어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SNS에서 뱉는 사회비판적인 글들이 아닐까 싶다. 솔직하면서 매우 가감없는 말들로 보는 우리로 하여금 속시원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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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은 간단하면서도 긴 고민을 만드는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똥이 안 나온다. 난 이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

-변비-매우 원초적이고 1차원적인 행동을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자학하는 모습은 웃음을 남긴다. 허나 단순히 이에 끝낼 수 없다. 우리는 흔히 능력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웃는 말로 '먹고 싸기만 하는 놈'이란 표현을 쓴다. 운동장이 기울어지고 높은 벽이 쳐진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우리는 변비에 걸려 자학만 하게 된다. 저자는 무기력한 청년 세대의 마지막 발악을 보여주고 이 세태를 만든 기성 세대, 꼰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다. 책 중반에 최저임금은 우리의 경쟁력이라 하며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 그의 비판의식은 계속 이어진다. 짧지만 뇌리에 박히는 표현으로 시작하면서 저자의 색깔을 보여준다.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니라 별개의 개새끼다.

-리빙포인트#3-저자는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던 표현들을 가차없이 바꿔가면서 오래동안 이어져온 우리의 관념에 금을 긋는다. 물론 조상들이 만들고 우리가 지켜나가는 보편적인 관습이나 관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와 부조리를 저지르면서도 뻔뻔하게도 관습과 관념 뒤에 숨어 합리화하는 수많은 이들에 대한 조롱과 같은 것이다. ​

 

자기 일상대소사엔 존내 감정적인 새끼들이 세월호 유가족분들 얘기만 나오면 무슨 논리 팩트 이성 기반에 합리주의 철학자들처럼 굴고 있네. 등신 쪼다 같은 것들이 아주 데카르트 납셨네. 씹새기들.

-합리주의자- 이성이 있기에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재를 지켜나간다. 하지만 감성 역시 인간 세계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영역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2014년 우리는 우리의 친구, 아들딸, 부모님을 잃었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에 속아 서로 대립했다. 잃었던 그들을 잊었다. 단지 우리는 이웃의 슬픔에 함께 울 수 없었을까. 기댈 어깨를 내줄 수 없었을까. 안아줄 수 없었을까.

 

 

잘못된 성관념에 대한 비판도 아주 강하게 한다. 

 

'사람'으로서의 멋진 일을 두고 '남자답다'고 

해서는 안되겠다.

-남자네~~-

성희롱을 없애는 방벚은 성희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성희롱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성희롱 예방교육-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살면서 쉽게 지나치고 만다. 농담이라면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성희롱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우리는 누군가를 상처줬을 것이다. 당하는 이들이 너무 예민하다고 치부하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조금씩 조심스러워지면 되지 않을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매우 비관적이지만 마음 속 분노를 밖으로 표출할 수 없는 소심함. 그렇기에 나도 이책을 읽으며 공감했다. 그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에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 현실이 꽤나 퍽퍽해서 못했던 것들을 대신 말해준다. 때문에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며 걱정을 놓치 못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를 던져주는 게 아닐까 싶다. 

 

나도 대단하지 않지만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당신도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 모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아니야.저자는 주로 자학적인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를 웃게 만들기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날카롭게 한다. 여러 경험들을 통해 느낀 자신을 성찰하는 글들은 마치 나를 보는 듯 하게 만들어 공감하게 만든다. 물론 보는 독자에 따라 심한 농담 이상의 비속어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욱 부담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살기 위해 더 부담스럽고 가시돋힌 말을 해야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때문에 저자는 우리 사회를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가장 투명하고 솔직하게 책에 담아냈다고 본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가 블랙코미디임을 보여준다. 

 

나는 뉴스를 즐겨본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영화보다도 더 암울하고 코미디보다도 웃기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성관계를 했지만 확증이 없어 무죄로 판결된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그리고 이를 불륜이며 위력을 합리화하는 자들. 증거가 없지만 원고의 진술이 일관된다는 이유로 6개월 실형이 선고된 곰탕집 성추행 사건. 그리고 모든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가는 자들. 법과 정의의 공간에서 원리와 원칙은 없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짜맞추는 사법부의 판결과 입맞에 맞게 다르게 보는 각자의 시선은 꽤나 웃기고 씁쓸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과연 사법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또 그들을 욕하면서도 나는 어제 떳떳한 하루를 살았는가. 그렇기에 책을 덮고 나서 마냥 웃을 수도, 울 수도, 분노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