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김형경의 작품이다. 김형경은 소설가이기도 하지만,어느 심리학자 못지 않은 심리학의 달인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김형경의 작품을 처음 읽어본다. [사람풍경] 과 [천 개의 공감]으로 심리에세이라는 자신만의 확고한 영역을 다지고 있는 듯 하다. 이 번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저자가 마치 심리학 전공의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작품이 전문서적처럼 딱딱하고 어렵다는 말은 아니다. '에세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 그대로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어느 전문가 못지 않은 작가의 해박한 지식은 놀라울 뿐이다.

 

사랑의 다른 이름 '좋은 이별'. 저자는 이별이라는 말 앞에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결코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다보면 '좋은이별'의 의미와 그 참 뜻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이별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떠한 이유에서 건 아름답고, 좋은 이별은 만날 수 없다. 그것은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나의 확고한 의지였다.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쿨하다'라는 표현이 있다. 구차하지 않고 뒤 끝없이 딱 부러진다는 의미 일 것이다. 이별이라는 말에서도 쿨하게 라는 말이 붙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흔히 연인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경우인데  그 상황에서도 실제로 쿨하다는 것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내면은 정 반대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또는 나 자신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일종의 보호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좋은 이별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저자는 좋은이별을 사랑이라는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별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그것도 아주 잘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별이 왜 중요한지. 이별 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 치유법 또한 아주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한 꼭지가 끝날 때에는 잘 정리된 '레시피'까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삶은 이별의 연속이라는 말이다. 물론 반대로 이야기하면 삶은 만남의 연속일 수도 있다. 이별을 하는 만큼 새로운 만남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별의 대상은 연인이 될수도 있고, 가족,친구,반려동물 혹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어떠한 사물일 수도 있다. 물론 앞에서 열거한 구체적 대상이 아닌 추상적인 것들도 포함될 수 있다.  이별을 잘 해야만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이별이 없는 만남은 혼란만 야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비워내는 연습을 해야만 가능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커다란 그릇에도 항상 잘 비우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의 가장 큰 목소리는 이별은 피할 수 없다는 것. 필연적인 것이기에 어느 누구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현명하게 극복해야만 좋은 만남, 좋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남,녀간의 연애 지침서는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여기에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이별도 포함된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 대상은 앞에서 열거한 것처럼 무수히 많다. 이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자세. 이별을 맞이했을 때 타인에게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별을 받아들인 후에 느끼는 슬픔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애도'의 과정을 치밀하게 말하고 있다.  또한. 이별과 만났을 때 내가 느끼는 분노와 충격, 슬픔 과 같이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감정상태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별후 시간이 지난 후에 감정적인 불안함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하지만,  완벽히 추스리지 못한 불안한 심리와 행동등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플만큼 충분히 아픈후에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의 모습, 다시 말해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새로운 이별에 덜 아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물론 이 책이 교과서는 아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을 받아본 경험이 있고, 오랫동안 이별의 고통스러운 터널을 직접 걸어나온 작가의 이야기이기에 좀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잇는 것 같다.

 

나는 한번 도 이별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리고,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도 거짓말 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대로 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 한 것이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수히 많은 이별을 이미 나는 경험햇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다가 올 이별에 대한 아픔을 애써 부정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말을 듣고 나면 너무나 당연스러운 것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순간 부터 나는 이별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자유롭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운 이별, 좋은 이별을 하는 과정이 비록 쉽지는 않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아픈 과정을 건강하게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슬픈감정을 솔직히 표현 하는 것. 소리내어 크게 우는 것과 같은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이별을 통해 좋은 만남을 갖기 위한 소중한 과정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듯 하다.

 

슬픔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무감각하고 마비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 슬퍼하지 않아도 잘못된 것이 아니고 느낄 수 있도록 주변에서도 배려해 준다. (본문 59쪽)

 

잃은 대상에 분노가 투사되면 상대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과 반대로 잃은 대상에 나르시시즘이 투사되면 대상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하게 된다. 슬퍼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상실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의도이다. (본문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