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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기위해 도시로 온다 / 권현숙 지음 / 세계사 펴냄

제목부터 독특한 이 책.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왜 인간이 죽기위해 도시로 가야 했는지 정확히 알수가 없다.

죽기위해 도시로 간것인지 아니면 도시에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인지.

하긴, 인간이라면 언제가는 반드시 죽어야할 운명을 타고 났기에, 어디에서 죽든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될것은 없다.

이 책은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서로가 비슷한 색채를 띠고 있어서인지 단편집이라기

보다 연작소설과 같은 느낌을 받게된다.

운전을 하는동안 자꾸만 뿌옇게 변하는 차창을 닦기위해 열심히 윈도우 브러쉬를 작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환하게 트이지 못하는 것은 차창을 닦기에는 너무나 마모되어 버린

브러쉬의 낡음 탓일런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시야의 갑갑함은 실제는 내 관념속의 제어장치의 고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품들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

혹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

또한 등장인물이 단지 남자와 여자로만 표현될뿐 구체적인 이름이 나타나질 않는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야 진정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말처럼, 작품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명명되어

지는 순간 어쩔수 없이 그 인물 한명에게 모든 시선일 쏠리듯,

이름이 분명치 않은 익명성은 모든이를 다 아우르는 대표성을 띠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남자 와 여자는 바로 우리들이 되어버린다.

생명의 시발지이자 안락한 보호공간이었던, 자궁속에 자리잡은 한 생명이 짧지 않은 시간동안

느겼던 감정은 무엇일까?

모체와의 뜨거운 교감으로 인해 가질수 있는 감정중에, 외로움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그 안락한 공간을 벗어나 도시라는 세계로 진입한 후에야 느낄수 있었을 것이다.

태줄이라는 사랑의 자양분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거세된 후에 느끼는 상실감의 또다른 이름이

'외로움'이라는 인간사회의 불치병은 아닐런지.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그 흔적들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남자와, 그 흔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픈

여자의 이야기.

머나먼 이국 땅에서 첫눈에 반해 버린 두 남녀의 만남이 멋드러진 로망이 아니라, 죽음과의

조우로 연결되는 과정또한 이 끊어진 태줄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솔직히 책을 읽는 내내 뻑뻑했던 느낌이 끝내 개운치가 않다.

우울함이라는 이름의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었던것 같은 느낌.

그 우울함을 깨끗이 세척해줄 식염수는 어디에 어떠한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을지.

그것을 찾아 가는 과정또한 인간이 죽기 위해 도시로 가는 과정과 같은 것은 아닐지.

다행히(?)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품 '순장'은 작가의 다른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현대인의 강박관념을 과거 순장이라는 풍습에 빗대어 쓴 글이 무척이나 재밌다.

박색의 외모로 인해 이뻐지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 죽어가는 여인의 전생은,

절색의 미모로 인해 산채로 무덤에 들어가야 했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아베마리아를 열창하는 김아중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그런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