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아잔 브라흐마 지음 / 류시화 옮김 / 이레 펴냄

사실 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분야의 책이다.

오래전 배꼽이라는 책을 비롯한 비슷한 류의 명상관련 서적들이 한참 주류를 이룰 때에도,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 분야였었다.

또한 류시화라는 작가의 정체(?)또한 명확히 판단이 서지 않았기에 이러한 명상관련 서적을 선듯

접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 사실 책의 표지도, 특히 이상한 표정의 여인네들,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독특한 제목과 더불어 류시화라는 시인(?)의 정신세계를 알고 싶었고

가장 큰 이유는 책과 더불어 오는 콩고물에 더욱 관심이 컸던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내용은 기존에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명상관련 책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지.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들을 앞,뒤 바꾸고 인용구 바꿔서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은 책이겠지 하는

선입관을 가지고 대했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큰 수확을 거두곤 한다.

바로 이 책이 그런 경우이다.

나의 올바르지 못한 책의 선택과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108가지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처음에는 나의 불성실한 태로로 인해 설렁설렁 읽었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중간중간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빼곰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마치 나의 무식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어쨋든 나는 기분이 무척 좋다.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날수 있었으니.

그 과정이야 어쨌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영국에서 태어나 기독교 학교를 다니고,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한 서양의 한 청년이 영혼의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삭발한 후 불교에 귀의했다.

이런 독특한 경력을 가진 수행승의 설법을 들어보자.

우리들은 모두 마음속에 코끼리를 키우고 있다.

단 지 그 코끼리에 대한 집착의 크기 다를 뿐이지 어느 누구하나 코끼리를 잘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코끼리에 대한 집착이 큰 사람일수록 다시 말해 욕망이 큰 사람일수록 그에 따르는 고통이 클 뿐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고통'이라는 단어는 '행복의 부재'라고.

행복의 부재를 없애기 위해서는 욕망의 자유가 아닌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마음에서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욕망에 얽매이다 못해 술취한 코끼리에 의해 나의 마음마저 빼앗겨 버린 주객전도의 상황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욕심,욕망이라는 커다란 고통을 (거기에는 행복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전제하에) 내려놓는

순간에야 비로서 우리 인간은 진정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을 얻을수 있다고 말한다.

그다지 거창한 말은 아니다.

어느 책에서든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것들을 행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것들을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크게 나의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행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수도 있다.

그렇다. 책에 나오는 대로 행한다면 나 또한, 아니 우리 모두 성인이 될수 있다.

너도 나도 성인이라면 이 세상 살아가는게 그다지 재미있지 많은 아닐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류의 책에서 어떠한 것들을 얻어가야 할까?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가지의 짧은 잠언집에서 우리가 새기고 실천할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자신에 대한 사랑 과 타인에 대한 사랑과 이 세상 모든 소소한 것들에 대한 사랑.

그런 사랑이야 말로 술취한 코끼리이건 미친 코끼리 이건 잘 길들일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것이다.

이 책의 장점중에 하나는 이야기를 쉽게 쉽게 한다는 것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이해할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하고 있으며, 유머러스한 그의 설법은 웃음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한다.

또한가지, 엄연히 불가에 입문에 수행승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색채가 진하지 않다.

저자 스스로도 말하듯이 자신의 이름은 불교와 로마 가톨릭, 영국의 성공회 ,흰두교 그리고 회교도에서

따왔다고 한다. 가히 모든 종교를 아우르고 있다. 정통적인 종교의 관점에서는 천인공로할 일일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도 이야기하듯이 교향악에 비유한 그의 종교관을 들어보면 그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바로 알수 있다.

"세상의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들 각자는 인생이라는 수업을 통해 우리가 가진 믿음의 가장 부드러운 중심부에 이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자의 종교안에서 사랑의 거장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각자의 종교를 잘 배웠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향악 단원들처럼 조화로움 속에 함께 연주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될 것이다."

- 본문 197쪽 중에서

금쪽같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기에 이곳에 일일이 인용할수는 없다.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한 권의 책이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오랫동안 곁에 두면서 곰곰히 읽어보고 싶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불어 류시화라는 작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