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의 소설 소재가 사랑과 이별, 우정에 중점을 두는 것이 많은데 이번엔 실연이란 주제였다. 사랑 이야기에서 실연도 어찌 보면 당연히 등장하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에쿠니의 실연은 보통의 실연과는 또 다른 차이를 드러낸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자가 사귀는 여자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자면 그 누구 받아줄까. 우리의 정서로서는, 아니 나 개인적인 정서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여자 하나코가 너무 사랑스러워 주위의 모든 남자들이 호감을 가지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그런 스타일의 여자라면 더더욱 질투와 시기 같은 것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모든 남성들의 사랑을 빼앗아 여자들의 적이 될 수도 있었던 하나코의 자살로 소설이 마무리되는데, 무슨 사연을 간직한 것인지 이해가 조금 안가는 부분이 있긴 하다.

작가는 그런 부분들을 독자가 잘 유추해보도록 유도한 것일까.

아님 하나코의 뒤죽박죽 삶을 일부러 끌어다 보여준 것일까.

여하튼 하나코란 인물도, 하나코를 받아들인 여주인공도, 하나코에 빠져 앞뒤 가리지 못하는 뭇 남성들도 다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들이었다.

 

 

 

이번 낙하하는 저녁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이트에서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걸로 보니 인기는 그다지 없었나 보다.

근데 이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의 애인을 받아들이다니 일본 여자들은 너그럽다’란 칭찬을 들었다고 후기를 쓴 영화감독 아이즈 나오키 씨는 말한다.

 

 

사실 이 소설이 에쿠니식으로 풀어갔기에 멜로 드라마였지,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풀었다면 스릴러 살인 사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에쿠니의 표현력이 돋보이는 문장들이 몇 군데 보인다.

[빌려간다고 미리 말을 했으니까 도둑질은 아니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어서 그냥 보냈다고, 미친 다케오는 말한다.] 여기서 정말 한마디로 다케오는 미쳤다는 말 외엔 갖다 붙일 말이 없다.

[하나코는 왠일로 신문을 펼쳐놓고... 그 위에 누워, 이러고 있으니까 군고구마가 된 기분이다] 얄미운 하나코의 행동이 천연덕스럽고 약간 귀여운 구석이 있다.

[여름밤에서는 벌레 냄새가 난다. 풀과 벌레와 공기가 뒤섞인 냄새, 어린애 같은 냄새다.] 역시 에쿠니의 후각 표현은 기발하다. 여름밤에서 벌레 냄새 어린애 냄새가 나다니.

[하늘에는 자몽하고 꼭 닮은, 어슴푸레 빨갛고 동그랗고 커다란 달이 떠 있다.] 그러고 보니 자몽같은 달 나도 본 적이 있는 듯하다.

[불쾌하다는 감정 따위, 벌써 잊은 지 오래다. 그런 감정을 느껴야 할 기관이 망가진 채 방치돼 있다.] 여주인공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러지 않고서야 어찌 그들을 다 받아들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