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야를 통틀어 30여 년의 세월동안 자신의 색채를 잃지 않고 꾸준히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음악의 경우 수 년의 세월동안 뮤지션만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980년에 4인조 밴드로 출발하던 초기 컬리지 락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 15장의 앨범을 발매한 R.E.M.의 음악 세계는 여전히 색채를 잃지 않고 있으며, 보다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R.E.M.의 새 앨범 'Collapse into Now'는 마치 오래 전에 잊고 있었던 친구와 재회하는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을 전달하는 것 같다. 보통 R.E.M.의 음악은 차분하고 사색적인 음악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보다 강렬해진 기타 사운드가 눈길을 끈다. 속도감있고 박력있는 얼터너티브 락 사운드가 담긴 'All The Best', 'Alligator_Aviator_Autopilot_Antimatter' 같은 곡은 그들의 초기 사운드와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만의 고유한 차분하면서도 사색적인 분위기를 전혀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번 앨범의 놀라운 특징이다. 천천히 진행되는 듯한 사운드로 이루어진 'ÜBerlin', 'Oh My Heart' 그리고 'Walk It Back'같은 곡은 기존의 팬들도 만족할 수 있는 훌륭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차분함과 강렬함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양극의 특징을 모두 잡아냄으로써 R.E.M.을 좋아하는 팬들 그리고 이전의 앨범들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귀기울이며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었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반복적으로 흘러가다 고조되는 일렉 기타 연주가 특징인 첫 곡 'Discover'는 R.E.M.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듯한 느낌을 든다. 'Discover'를 외치는 마이클 스타이프의 호소력있는 목소리가 매력적인 곡인 것 같다. 두번째 곡 'All The Best'는 보다 강렬하고 스피드한 일렉기타와 드럼 연주가 일품인 곡이다. 강렬한 얼터너티브 락 사운드같은 느낌을 주는 곡의 구성이 마음에 든다. 

세번째 곡 'ÜBerlin'은 R.E.M.의 차분한 사운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이끌어내는 곡같다. 마치 'Losing My Religion'을 연상 시키듯이 천천히 흘러가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속에서 쓸쓸히 읊는듯한 마이클 스타이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후렴부에 이르면 조금 실험적인 의도가 보이는데, 강렬한 기타 솔로 연주와 박수 소리를 연상시키는 전자음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Oh My Heart'는 차분한 R.E.M. 사운드와 컨츄리 뮤직의 분위기가 조합된 사색적인 곡이다. 마치 시를 읽듯이 반복적이고 운율있는 가사를 부르는 마이클 스타이프의 목소리 그리고 아코디언 사운드가 곡의 아름다움을 살린다.

다섯번 째 곡 'It Happened Today'는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곡이다.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주고 받는 듯한 두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박수소리같은 비트가 어우려져 흘러가다가 점점 폭발하는 듯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펄 잼의 에디 베더가 가세하여 허밍으로 감정을 호소하는 후반부의 음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후 흘러나오는 'Every Day Is Yours To Win'은 그야말로 차분함 그 자체로 이루어진 곡이다. 몽롱한 자장가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곡의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Mine Smell Like Honey'는 초반부의 두 곡처럼 리듬감과 속도감을 가진 매력적인 곡이다. 강렬한 일렉 기타의 리듬 속에서 진행되는 곡의 구성이 R.E.M.의 차분한 음악에 질려있을 사람들에게 귀를 다시 기울이게 만들만큼 매력있다. 'Walk It Back'은 다시 R.E.M.의 차분한 사운드로 되돌아와 다시 친숙한 느낌을 준다. 차분한 건반음과 정적인 리듬 연주가 중점을 이루는 점이 특징인데, 쓸쓸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마이클 스타이프의 목소리를 뒷받침하는 여성 보컬들의 허밍이 가스펠을 연상시킬 정도로 경건한 느낌을 준다.

'Alligator_Aviator_Autopilot_Antimatter'라는 곡을 들으면 다시 강렬한 얼터너티브 락으로 회귀한다. 신스팝 뮤지션 피치스와 마이클 스타이프가 함께 합창하는 곡의 구성이 힘차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속도감있는 일렉기타의 사운드는 'That Someone Is You'에서도 이어진다. 마치 펑크락을 연상시키는 속도감과 리듬감이 폭발하는 사운드는 30여 년동안 활동한 노장 밴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차다. 11번 째 곡 'Me, Marlon Brando, Marlon Brando And I'는 쓸쓸하고 사색적인 R.E.M. 사운드의 정석을 보여준다.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차분하게 노래를 부르는 마이클 스타이프의 목소리가 쓸쓸함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앨범의 마지막 곡 'Blue'는 제목처럼 상당히 우울하고 쓸쓸한 정서를 잘 전달하는 곡이다. 강렬한 일렉 사운드의 노이즈가 흐르는 가운데, 마치 무언가를 빠르게 읽어내는 듯한 목소리가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다. 패티 스미스의 연륜있는 목소리가 매력적인데, 쓸쓸한 분위기에 정말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통해 우울한 곡의 분위기를 호소력있게 전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4분 가량 진행되는 곡의 쓸쓸함이 지나간 후, 첫 곡 'Discover'의 기타 사운드로 전환되면서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패티 스미스의 허밍과 'Discover'를 외치는 마이클 스타이프의 목소리가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되는 앨범이 구성에 탄복하게 만든다. 

이상 R.E.M.의 새 앨범 'Collapse into Now'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간략히 적어봤다. 초기의 차분한 사운드 그리고 얼터너티브 락의 강렬한 사운드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 수 밖에 없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30여 년이란 긴 세월에도 멈추지 않고 거대한 족적을 계속 남기는 그들의 열정에 칭찬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