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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런지에의 활약을 담은 로베르트 반 홀릭의 소설들 중 '쇠못 살인자'는 순서 상 '호수 살인자'의 다음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디런지에의 활약을 담은 소설들은 보통 세 사건이 연관되어 발생하고, 그 사건들 간의 연결 고리 속에서 숨겨진 음모가 드러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쇠못 살인자' 역시 디런지에의 수사 과정에서 세 가지 사건이 연결되어 가면서 살인범의 정체를 추적하는 특징을 보인다. '쇠못 살인자'는 랴오리엔팡이란 이름의 여인의 실종 사건을 맡은 디런지에가 예씨 성을 가진 두 형제의 소송을 통해 끔찍한 살인사건을 접하면서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골동품 업자 판펑의 집에서 한 여인의 시체가 목잘린 체 발견되자 디런지에는 실종된 랴오 소저의 행방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사건을 추적하는 방식은 디런지에의 활약을 담은 기존의 소설과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호수 살인자'에서 디런지에의 부하가 된 타오간이 자신의 도박 경험을 이용해 사건에 관한 실마리를 파악하고, 디런지에의 수령 시절 줄돋 따라다니던 홍 수형리, 마중과 차오타이가 조사를 벌이는 과정이 흥미를 자아낸다. 한편 '호수 살인자'에서 디 공 자신이 거지 차림으로 변장해 평민들로부터 사건에 관한 정보를 얻던 것처럼, '쇠못 살인자'에서도 의원으로 분장해 사건에 관한 정보를 몸소 구한다. 두 사건의 연관성을 파악한 디런지에는 판결을 통해 질투와 탐욕에 눈이 멀어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어 버린 한 인간의 이중성을 충격적으로 폭로한다.

한편 '쇠못 살인자'에는 또 다른 살인 사건 하나가 등장한다. 몸소 의원으로 분장해 현장에서 사건의 단서를 모으던 디런지에는 평소 뛰어난 인품과 명성을 가진 권법가 란타오쿠이가 목욕탕에서 독살당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호수 살인자'에서 시라는 동양적인 요소를 등장시켜 숨겨진 실마리를 찾는 추리소설의 묘미를 보인 로베르트 반 홀릭은 '쇠못 살인자'에서도 칠반이라는 요소를 통해 범인의 실체를 드러낸다. 란타오쿠이가 죽기 직전 남긴 칠반의 그림은 살인범의 정체를 알리는 다잉 메시지가 되어 살인범을 알게 되는 단서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디런지에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인과 대립하면서 관직에 근무하는 동안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루 부인의 남편이 독살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을 들은 디런지에는 루 부인을 송환해 소문의 진실을 알아내려 하지만, 영악한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지식을 동원해 디 공을 궁지에 몰아 넣는다. 디런지에는 죽은 자의 관을 파헤치는 것은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엄격히 금기시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끝내 땅을 파 시체의 독 중독 여부를 조사한다. 하지만 원하던 증거가 나오지 않자 디런지에는 스스로 관직에 물러나기로 결심한다.

관직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한 디런지에는 명민한 쿠오 부인의 도움으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그녀가 알려준 묘한 이야기 덕분에 디런지에는 시체에 남겨진 살인의 단서인 '쇠못'을 발견하고 살인범을 징벌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디런지에는 쿠오 부인이 알려준 사실을 통해 그녀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쇠못 살인자'가 로베르트 반 홀릭의 소설 중에서 가장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쿠오 부인의 범죄를 알게 된 디런지에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눈 덮인 약산에서 조우한 디런지에와 쿠오 부인의 마지막 만남이 안타까운 감정을 자아낸다.

'쇠못 살인자'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당시 배우자에 의해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던 고대의 여인들의 비극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권위적인 남성 배우자에게 순종과 정절을 강조하던 사회 속에서 살아가던 여인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 행위에 가담하고, 심지어 남편을 살해하고 마는 여인들의 파국적인 행동은 어찌보면 자유가 억압된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여인들의 몸부림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을 해결한 후 디런지에는 황제의 명으로 중앙 관리로 승진하게 된다. 어찌보면 해피엔딩이라 볼 수 있지만 '기쁨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회한과 슬픔이어라'라는 글처럼 디런지에는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디 공의 어린 시절부터 수족같이 따라다닌 홍 수형리가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이후 그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음을 한탄한다. 게다가 그는 부하들과 함께 몸소 사건을 추리하던 과거의 판관 시절을 정리하고 중앙 관리의 임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현실의 무게감을 체감한다.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디런지에와 그의 부하들의 모습이 인상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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