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이라는 제목의 일부이기도한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은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카모메 식당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카모메'는 일본어로 갈매기라는 뜻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는 그곳에 '살찐 갈매기'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영화 속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인 사치에처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여자들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핀란드 헬링키로 떠난다. 실제 카모메 식당으로 날아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 그녀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싶다는 용망을 가지고...

 

"솔직히 <카모메 식당>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거의 담겨 있지 않다. 특별한 인생을 말하지도 않고, 특별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저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는 여자들이 핀란드에 있는 작은 식당에 모여 소박한 밥상을 차려놓고 대화를 나누는 게 이야기의 전부다. 왜, 어떤 이유로 핀란드에 오게 되었는지, 그녀들 누구도 섣불리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그곳에 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들은 마냥 즐거워 보인다. 그녀들이 뱉어내는 작은 웃음소리, 자유롭게 뒤섞인 그 웃음소리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숨통을 튀어줄 방법으로 나는 먼저 '진짜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지에는 이상하게 혼자 다니는 여자들이 늘 바글거린다. 나는 여자들이 남자보다 홀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이유가 평소 절대적인 자유가 훨씬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도중 누군가가 말했다. 사회적 신분이 높을수록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분이 낮으면 눈치 봐야 할 사람이 많고, 자연히 자신의 의지로 뭔가를 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아마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을 확률이 높다. 결혼을 원치 않아도 결혼하라는 압박에 시달려야 하고, 터프하게 살고 싶어도 적당히 여성스러운 몸짓을 꾸미도록 강요받고, 야망을 갖고 싶어도 조신한 척 욕망을 되도록 절제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억눌리고 길들여진 모습으로 살아가다보면, 문득 이 모든 굴레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반항심이 들기 마련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나를 찾고 싶은 욕구다."

 

책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에는 아홉명의 여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 황희연이 그들을 인터뷰한 느낌 그대로의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으므로, 누군가가 자유롭게 흘려보낸 인생의 한 귀퉁이라도 살짝 열어젖히고 깊이 염탐하고 싶었다. 나는 그녀들을 통해 사람 만나는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행복을 손에 쥐고 즐겁게 만지작거리는 방법을 배웠다. 왜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세상 바깥으로 떠돌게 되었는지, 왜 갑자기 다른 직업으로 전향해 파란만장한 삶을 자처하게 되었는지, 궁극적으로 그렇게 하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인생이 흘러가는 모양새에 대해서도 훨씬 너그럽고 관대해졌다. 행복해지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인생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오만하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는, 뭔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있을 때는 인생이 마구 헝클어지기만 하더니, 버리기 위해 애쓰고 경쟁에서 이탈하기 위해 노력하자 인생이 오히려 반듯하고 깔끔해졌다. 이런 방식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녀들의 삶을 통해 실증적으로 배웠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때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건, 진짜 사실이다."

 

"책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에는 패션지 기자에서 한옥카페 주인이 된 나정원, 전산실 프로그래머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정호현, SM 엔터테인먼트 부장에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된 이경원, 특수학교 교사에서 인디 뮤지션이 된 시와, 사진기자에서 가방쇼핑몰 사장이 된 이수진, 방송작가에서 세계를 유랑하는 여행가가 된 미노, 패션 디자이너에서 동화작가가 된 이반디, 영진위 국제팀 출판담당자에서 언어치료사가 된 양유정, 별별 직업을 거쳐 인류학 탐험가가 된 이민영까지 아홉명의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산실 프로그래머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정호현이라는 인물은 영화 <쿠바의 연인>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직접 만나본적이 있었는데, 책에서도 소개가 되어서 반가웠다.

 

SM 엔터테인먼트 부장에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된 이경원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그녀처럼 살고 싶어진다. 소비를 즐기는 삶보다 제대로 버릴 줄 아는 삶이 얼마나 현명하고 여유로운지가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이 예전에는 누구보다 소비지향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고 고백한다. 갖고 싶은 건 반드시 가져야 직성이 풀렸다. 심심할 틈이 없었고, 외로울 틈도 없었다. 혼자서 씩씩하게 소비하고 즐기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버리는 일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잘 사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방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분류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있다. 여행을 갈 때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대신 최소한의 짐만 들고 움직인다.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몇 개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방은 하나면 족하고, 옷은 딱 갈아입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책 속 카모메 식당의 인터뷰 손님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단연 시와였다. 시와는 특수학교 교사에서 인디뮤지션이 된 여인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왜이리 나 자신과 닮아있는지... 수줍은 많은 성격,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힘들어했던 일까지 나의 상황과 같았다.

 

"음악치료를 가르쳐준 선생님과 친해져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주 나웠어요. 근데 선생님이 어느 날 저에게 음악치료를 정식으로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권하시더라고요. 흥미가 생겨 스무 번의 세션을 진행했어요. 저는 치료실 방안에 누워 있고, 선생님은 음악을 들려줘요. 그 다음에 눈을 감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이야기해요. 그걸 선생님이 기록해 놓았다가 대화를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이미지들이 당시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 고민하던 것들과 다 연결이 되는 거예요. 말로 하는 상담보다 음악으로 하는 상담이 제 마음 깊은 곳까지 열어 보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더라고요."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자신들의 행복과 자아를 찾아가는 아홉명의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저자 황희연의 글솜씨도 매력적이다. 편안하면서도 그녀들의 사념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저자의 올곧은 마음가짐이 글로 표현됬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나서 영화 <카모메 식당>도 관람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의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시간을 갖아야겠다.

 

"내가 만난 여자들은 결코 인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갈등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 치열한 과정, 나를 알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모메 식당에서 만난 그녀들은 자신의 정체를 대체로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어떤 옷을 입었을 때 더 화사하게 웃을 수 있는지, 자신의 못난 부분은 무엇이며 기특한 부분은 무엇인지. 자신의 비밀을 많이 캐낸 사람만이 행복의 비법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