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미리니름은 하지 말자!)

장미는 자기의 소설을 내기 위해 남의 이름으로 책을 내는 대필작가이다. 7년을 그렇게 지내왔지만 그녀는 자신의 책을 펴내지 못했고, 어느날 출판사의 선배가 자신에게 이미 죽은 재력가의 딸의 연애담이 담긴 책을 써달라고 요구한다.

썩은 동앗줄인지 금 동앗줄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잡아야 하는 절박하고 비참한 심정으로 프랑스로 떠나게 된 대필작가, 장미.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추적하려 한다. 그런데 추척의 모든 단서가 될 것이 한 사내의 것과 바뀜으로서 모든 추적인 불가능하게 되었고, 동시에 모든 추적이 가능하게 된 여행 역정이 시작된다.  

  

구성 & 배경

책은 현실과 가상 혹은 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한 액자형 소설 같이 느껴진다. (만구 내 생각.) 

표면적으로는 장미와 테오의 시점에서 별개의 두 사랑의 역정이 번갈아 그려진다. 이런 구성은 병치된 것이지만, 한 커플의 만남이 있었기에 한 커플의 이야기가 완성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커플이 먼저 이뤄진 것이냐 또한 상상하기 나름일 것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상상을 펼칠 수 있도록 짜여진 점에서 흥미로운 구성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에서는 '장미&테오, 테오&장미'란 식으로 엮음으로써 책과 현실, 현실과 책을 넘나드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마치 책 속의 어떤 문제가 어떤 식으로 결론나면 자신 또한 그렇게 될 수 있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예컨대, 어려운 사랑이 이뤄지면 자신이 꿈꾸는 사랑도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식의.)

 

 책에서 로드무비 픽션이라 내 건 만큼, 주변 정경이 아름답게 묘사된다. 주인공들의 눈에 의해 감각화된 정경은 좁기도 하고 넓기도 하다. 아무래도 초점 화자의 심리에 중점을 두다보니 주변 풍경 묘사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느껴진다.

 

인물

소설을 읽을 때, 사건이 주는 흡입력만큼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이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인공 장미, 로베르, 레아 그리고 테오가 나 자신이지만 수많은 독자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우주 그 자체이기에. 소설은 바로 우리 자신 안에 늘 존재하기에.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과 말, 사고방식을 통해 그에 따르는 상황의 흐름에 크게 공감할 수 있다. 다소 얼토당토않은 느낌이 드는 스토리더라도, 인물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알게되면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사건의 전개에 대한 공감도는 달라진다. (그래서 캐릭터설정을 확실히 하게 되면 소설이 줄줄 쓰인다고 소설가들이 말들하는 것 같다.) 

  일희일비하게 되는 사건 속에 그려진 주인공의 심정은 무척이나 가까운 지인의 아픔인 것같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특히나 네 주인공 모두 매력있는 인물이기에 책을 읽는 동안 충분히 그들에게 몰입하고 연민하고 사랑하게 된다.

  또, 주인공들의 고민과 대화들은 전혀 가볍지않다. 사랑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지성인으로서 저자가 겪었을 고민들이 반영된 것들이 많다. (결국 대개의 소설가들이 인물에 투영하는 것은 저자 자신, 주변의 인물 내지 우리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이 더욱 사랑스럽다.

 

제목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라는 생각은 하나의 단서이며 모든 것일 수 있겠다고. 책을 읽어나감에 이 생각이 가장 큰 단서이자 결과론적으로 모든 사건의 발단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추리소설적인 재미가 쏠쏠하다.

  이 단서는 여러 사람에게 다른 의미를 갖고 다르게 작용하지만 결국은 주인공들에게 하나의 의미로 수렴하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냥 사건 속의 주된 단서일 뿐일까? 이를 물어가며 책을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고, 이에 대해 독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눠보면 더욱 흥미로운 발견이 가능할 것 같다.

 

정리와 감상

이 소설은 주인공의 문제해결과정에서 연애가 함께 진행되며 인물의 심리가 절절히 드러나는 로드무비다. 언젠가 '로드무비'로 유명한 <길 위에서>를 보면서 그걸 그대로 심리소설로 적은 적이 있다. 그 작품에서는 많은 대사 대신 넓은 시야로 길 위에 선 두 사람의 모습과 행동을 쫓고 있다. 그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우리 안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들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느낄 수는 있다. 그 감정이입을 바탕으로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니까 그 상황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고 공감대가 증폭되었다. '이렇게 머리속에 그린 상상으로 한 소설이 만들어 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장르 자체가 갖는 특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느 소설이나 거의 성장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성장하거나 그로 인해 성숙하거나, 혹은 성장에 실패한다. (물론 실패함으로써 또다른 성장의 가능성 내지 현실비판의식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 책 또한 두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한 편의 성장소설이다.

책표지에는 유화로 그려진 노란빛 미모자가 한가득한 가운데 작은 글씨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파리에선 누구나 사랑을 하고, 프로방스에선 누구나 꽃을 밟는다.

 파리가 아니어도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다. 프로방스가 아니라도 우리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소설은 화려한 배경과 풍경을 배경으로 극적인 사랑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지만, 우리 삶속의 사랑은 화려한 불빛과 풍경이 없이도 탄생하고 조용한 가운데 성숙할 수도 있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소설에 있지만, 소설 같은 우연이 아니라도 소설을 능가하는 우연이 우리 삶과 인연에 있다. 그들에겐 서로를 그냥 스쳐갈 수 없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딱히 그런 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이 서로에게 끌렸을 망정 자신의 약함과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스쳐지나갈 인연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소설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화려한 풍경과 배경 속의 이뤄지는 극적인 사랑의 여로가 아니라 진실된 자신의 모습과 진실의 말로써 대화하는 지속적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만남이라 생각되는 인연의 시작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여행을 통해 어떻게 극복되는 지가 이 소설의 묘미다. 여행은 다름아닌 인생이다. 사람의 삶은 본능에 맡겨야하는 순간이 있지만 인연이든 인생이든 길게 볼 일이다.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그 인생의 조언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주인공들은 그 조언을 긴 여행을 통해 직접 우리에게 살을 맞대고 이야기한다. 인생이란 여행에 있어 정말 필요하고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소설을 여행하는 동안 지긋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누가미모자를그렸나, 손미나의로드무비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