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 고증에 충실하여 소설로 쓴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문학이다. 근데, 이 책은 위인전 아빠와 소설 엄마 사이에서 "엄마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란 질물을 받고 태어난 책인가 싶다

난 연암앓이이다. 연암 박지원을 흠모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 고전문학 및 고전소설 박사인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서였다. 박지원 소설뿐만 아니라 열하일기, 서간문을 엮은 책에 대한 소개를 통해 박지원이란 인물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찍히 그가 쓴 한문단편선도 다시 읽었고, 그 당시에 신간이었던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를 먼저 만나보고 연암의 인간미에도 빠져들었다. 물론 그의 문장력은 <열하일기>가 백미이다. 하지만 <열하일기>를 통해 그의 뛰어난 문장력을 온전히 판단하고 평가하기엔 스스로 글을 읽어내는 내공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스스로 연암앓이라고 하지만 실지로 그의 글솜씨와 관련된 책들만 종종 찾아보았지, 그의 생애를 온전히 담은 평전이나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삶을 모르고서 그의 능력만을 긍정하는 편협된 인간에 대한 이해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간으로 나온 이 책을 얼른 잡게 되었다.    

 

’소설로 쓴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문학’ 이 책의 부제이다.

책은 일단 이야기 형식인 소설로 써졌고, 전지적 작가시점이되 종종 박지원을 초점화자로 두고 있어 인물의 내적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어 재미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어서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을 했구나. ’라며 그야말로 소설 속 인물의 감정,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지루하지 않게 읽어 나가게 된다. 딱딱한 위인전이라면 못 느낄 인물 간의 심리적 갈등이나 대립 상황도 잘 묘사되었고, 장면이나 상황 묘사도 머릿속에 그림 그리듯 펼쳐진다. (이성관계인 어른끼리의 이야기가 담긴 내용과 농도 있어 이 책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적은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뭐 개인적인 소견으로서는 중고등학생들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긴하지만.)  

 

하지만, 책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조금 혼란이 온다. 문학의 장르 간에 벽이나 허물이 없어졌다지만, 아무래도 어떤 경계를 넘기고 쓰여진 글은 다소 산만함을 준다. 이 책이 그렇다.    

  일단은 저자가 서문에서 연암의 일대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되 되도록이면 고증에 충실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소설과 역사적사실을 결합한 팩션에 가깝다고 봐야할지 고민이 된다. 그냥 소설이라고 하기엔 역사적 사실 내지 기록에 해당하는 부분을 소설화하여 옮겨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광해군과 인조반정의 과정이나 소현세자가 인조의 노여움으로 사게 되는 사건 과 같이 역사적 사실에 해당하는 내용을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정조가 그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또 한참 소설이 전개되는 과정에 한 인물에 대한 정보가 인물백과사전처럼 구체적으로 나열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글을 읽는데 맥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독자의 기억력이 떨어질까 저자가 걱정을 많이 했는지, 어떤 인물에 대한 정보가 똑같이 번복되는 경우도 있다.  이왕이면 글만 수두룩 빽빽하게 있는 게 아니라,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 사물에 대한 정보는 주석으로 처리하거나 책의 여백에 따로 읽도록 두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지도나 사진 등의 참고 자료도 더하면 더 좋을테고.

 

 어쨌든 역사적인 설명도 이야기화하여 전달하고 있기에 좀 산만하긴 하지만 소설이려니 하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인물들이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고증을 충실히 한만큼  이왕이면 고증에 충실한 만큼 참고자료나 관련된 서적에 대한 걸 싣거나, 다른 책을 소개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아쉬워해본다. 특히나 소설이라 시간의 순서가 바뀌거나 가공된 부분이 있는데, 연암의 연보를 싣지 않은 것에 저자의 배려가 부족함을 느낀다. 혹은 저자의 불찰이거나, 그냥 이 책은 위인전 아빠와 소설 엄마 사이에서 "엄마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란 질물을 받고 태어난 책인가 싶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연암의 삶의 모습을 꽤나 재미있게 담았구나 싶었다. 비루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품고 있기는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연암의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들을 잘 살려 상당히 생생하게 느끼도록 그리고 있다. 몇 번이나 피식거리며 웃게 된다.    
 본래 연암의 열하일기는 엄청난 분량인데, 책에서는 그에 바탕하여 각 장에 해당하는 내용을 간략히 줄이며 연암의 관심이 두드러지는 부분들을 몇 가지 뽑아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 그 부분들은 내가 열하일기를 읽었을 때, 유난히 재미있게 읽었던 대표적인 대목들이 많았다.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열하일기에서 떠올렸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재미있어했던 대목들을 연상하니 소설 속에 장면을 상상하는 게 더욱 즐거웠다. 방대한 열하일기를 상당히 압축적으로 소개하며 극히 일부분만 제시되므로 이왕이면 이 책은 열하일기를 읽은 후에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왜냐면 역시 연암이 느낀 생각과 감정을 느끼기엔 연암 자신이 쓴 열하일기를 대신할 글이 없기 때문이며, 그 글을 통해서만 실감할 수 있는 연암의 사유와 해학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