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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애처로운 투쟁과 눈부신 승리

기독교는 유대의 한 인간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그는 팔레스틴의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유대인이었으나 역사상 가장 많이 회자된 인물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그의 이름이 적힌 책을 출판한다. 예수는 그의 언급이라 일컬어진 것처럼 기독교의 “알파와 오메가”다. 신자들은 그를 인간이자 신으로(칼케돈 정의에 따르면 예수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지닌 분이다) 받아들인다. 그런 수식어는 역사상 누구도 지녀보지 못한 바다. 때문에 예수는 매력적인 존재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매력에 빠져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훔쳐온 예수. 많은 이들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왔다. 2천년 전 팔레스틴의 한 인간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과연 얼마나 매력적이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인가? 예수의 모습을 재구성해보는 것은 신자와 비신자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했을 터이다. 소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역시 그런 맥락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 역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예수이지만, 그러나 그 예수는 너무도 매력적이다. 틀에 박힌, 이콘(icon) 상의 인자하고 한점 동요도 없어 보이는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고뇌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예수의 모습은 예수를 더욱 친근하게 한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점차 그의 고뇌와 절규, 환희와 절망, 유혹과 승리가 나의 것인 양, 내 형제의 것인 양 다가왔다.

카잔차키스는 글의 시작부터 투쟁하는 예수 모습을 다룬다. 동족의 처형에 쓰일 십자가를 만드는 예수는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에 고통스러워한다. 십자가를 만드는 그를 이웃들은 조롱하고, 위협하고, 저주한다. 그 스스로도 자산의 일을 저주하긴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을 명령하시는 것인가?’ 자기 스스로도 경멸하는 일을 명령하신 하나님, 그 앞에서 끝없이 거부하고 저항하는 고통은 자신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것은 고독한 투쟁이었다. 깊은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 일들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기에 예수는 거부하면서도, 고뇌하면서도 받아들인다. 자신이 손수 만든 십자가를 짊어지고 처형장으로 향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처절한 운명을 말이다.

그러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런 아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아들의 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더구나 그 아들은 탄생에서부터 얼마나 많은 기적을 일으켰으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기대를 불러왔는가. 기대가 클수록 그 나락은 끝이 없는 무간의 지옥을 선사하기 마련.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갖는 기대를 예수는 철저히 무너뜨린다.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평범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대를 이어가는 모습을 고대하지만 아들의 운명은 그럴 수 없다. 마리아는 그런 자신의 처지에 절규한다. 그러나 비단 그것이 어머니의 심정만이 아니다. 아들 역시 똑같은 절규를 가지고 있다. 그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너무도 힘겨워 한다. 자신이 사랑을 느꼈던 여인에게 말 못한 절망을 안겨주어야 했던, 자신이 사랑 하는 가족에게 커다란 절망을 안겨줘야 했던 그의 심정역시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그의 삶은 그렇게 저주받은 운명에 대한 투쟁으로 시작된다.

이제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람들 앞에서 말하라고 하는 말들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얼마나 많은 반발과 핍박을 불러들일지 알고 있음에도 그 말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고 말하고, 유대인에게 죄인들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롱하고, 멸시한다. 심지어는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말을 해야 했다.

소설속의 예수는 전지전능하지 못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확고히 알아듣지 못한다. 세례예식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모습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수가 세례자에게 수세 받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지만 그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세례자가 그것을 알고 예수에게 알려준다. 그 만큼 예수는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저 순종한다.

그는 그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시험을 이겨낸 뒤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다. 그것은 놀랍게도 죽음이다.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운명이 죽음임을 아는 자에게 운명을 향해 한 발자국 내 딛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가혹한 사명 앞에서 예수는 너무도 두려워한다. 더구나 그의 주변에는 그것을 이해해줄 만한 사람이 없다. 오직 가장 적대적으로 생각했던 유다만이 있을 뿐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저 예수를 사랑했을 뿐이거나, 그도 아니면 예수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뿐이다. 예수는 유다에게만 “유다 나의 형제여, 내 곁에 있어요”라고 말할 뿐이다. 유다만이 그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였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누가 자신의 사명 앞에 순종할 수 있겠는가?

실로 예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많은 유혹을 이겨내야만 했다. 그 유혹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이 누리는 보통의 감정들이었다.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과 가정이 주는 안락함이다. 예수는 막달라의 마리아를 사랑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그 감정은 계속되어 왔다. 결국 신부를 찾을 나이가 됐을 때 그는 마리아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려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마리아는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할 가련한 사람이 되고 만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죄의식은 예수를 괴롭힌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그녀를 끌어들인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차지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그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한 처음의 행동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 것이었다. 창녀가 되어버린 사랑 앞에서 용서를 비는 예수. 다행이도 그는 이 일을 통해 가혹한 운명을 조금씩 이겨낸다.

가정의 안락함 역시 예수에게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카잔차키스의 소설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이 부분인데, 예수는 마지막 악마의 유혹으로 인해 마리아와 마르다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환상을 보게 된다. 그 환상 속에서의 모습은 너무도 큰 행복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린 그 모습이 예수에게도 적용된다. 예수는 환상 속에서 자신의 삶에 만족해한다. 비록 악마에 의한 마지막 유혹이었지만 누가 그런 삶을 산다고 해서 욕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복이었고, 누구나 바라는 바가 아닌가? 그러나 예수는 안락함에 자신을 묵어 놓지 않는다. 그는 그와 제자들이 가고자 했던 길을 거부한 배신자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악마가 보낸 유혹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마지막 유혹을 이겨냄으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는 ‘인간 예수’였다고 생각된다. 그는 절대적으로 인간이었던 예수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이자 승리였다. 유혹과 고뇌 속에서 몸부림치는 예수의 모습은 우리네 인간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장르로 쓰여 졌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완벽하게 재구성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려진 예수는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한 사람의 고행에 찬 여정을 보여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오해와 외면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모습은 예수를 다른 누구의 그리스도가 아닌 나의 그리스도가 되게 한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인간이 최후의 유혹을 이겨내고 승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적으로 고양된 예수가 전해줄 수 없는 친숙함이다. 그것은 너무도 소중하다. 작품 속의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최후의 유혹을 이겨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종을 보임으로써 “다 이루었다”. 한 인간이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예수의 삶의 여정은 죽음으로 향하는 순례였다. 그의 삶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대단원을 맞이한다. 그것은 처절한 저항에서 시작하여 깨달음과 고뇌, 두려움과 유혹을 이겨낸 한 사람의 사투였다. 그 승리는 그의 후계자들에게 벅찬 감동을 주었고, 용기를 주었다.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그의 글에서 죽음 이후에 부활을 다루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통 그리스도교인은 부활이 예수 사역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유혹을 물리쳤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지상과제를 완수한다. 그것은 승리이자 완성이었다.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예수의 사투를 통해 큰 소망을 얻는다. 예수의 죽음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우리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결코 조작된 것이거나 짜여진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또한 우리 역시 수많은 유혹 앞에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준다.

글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벅찬 감동을 만끽했다. 거침없이 써 내려간 저자의 필력은 물론이거니와 예수의 섬세한 감성을 묘사한 구절들은 예수를 나의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예수는 결국 십자가 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그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승리임을 깨닫는 순간 십자가 위의 예수도, 나도,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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