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여관

 

나혜석, 김일엽, 이응노. 이름을 들으면, 뭔가 손에 잡힐 것 같은, 그러나 정작 말하라면 입에서 몇 마디 나오지 못하는 그런 알 듯 말 듯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아니 그런 사람들이 묵었던 자리,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의 흔적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난. 이 책의 저자처럼 그들의 흔적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남겨두고 모아 보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수덕여관- 이 책의 화자는 수덕여관이다 - 은 말한다,

“손님들은 떠나고 깨끗이 비워졌지만 나는 그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19쪽)

 

이 책, 그러한 심정으로 그들의 기록을 묶은 책이다,

그들의 행적, 하나 하나가 올올이 들어있는, 보석같은 책이다.

그들과 수덕여관과의 교집합, 그리고 그들의 삶을 모두 담아 놓았다.

 

수덕여관은 어떤 곳인가?

 

먼저, 그들의 묵고 갔던 곳, ‘수덕여관’은 어떤 자리인가?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된다.

‘파리의 몽마르트르의 술집처럼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들의 특별한 아지트’ (7쪽)

‘덕숭산 자락에 있는 수덕여관은 특히 단풍이 절경이다.’(7쪽)

‘본래 비구니 스님들이 쓰던 절간인데 수덕사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손님들의 쉼터가 되었다.’(10쪽)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의 끝 페이지에 나와 있다.

현재는 예산군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는 것까지, 그래서 이 책에서 군데군데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장면들은 낙엽까지 포함해서 사실 그대로이다.

 

여기 세 사람, 다녀가다

 

수덕여관에서 묵고 가,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나혜석, 김일엽, 이응노 세 명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이미 100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그렇게 옛적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고민은 현재 우리가 겪는 고민과 같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들과 같은 고민을 100년 전에 이미 했다는 말이다.

그 당시 시대를 앞서 살았던 그들에게는 ‘시대와의 불화’라는 표현이 아주 딱 맞는 말이다. 그러한 고민을 안고 살았으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책 덕분에 자칫 잊혀질뻔 했던 세 명의 삶을 살펴볼 수 있었다.

평소 그들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어디 자세히 살펴볼 여유가 있었던가? 해서 선각자적인 삶을 살았던 분, 맞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들의 삶을 아주 간명하게, 간단하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으니, 그들을 잘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고 난 수확중 하나이다.

 

나혜석은 어떤 인물인가로부터, 그녀가 여성계에 남긴 업적과 오해 받았던 점들을 저자는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놓았다. 

또한 왜 일엽은 수도자가 되었는가? 그녀가 문단과 불교계에 남기고 간 족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응노 화백은 왜 한국국적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 책 몇 권으로도 부족할 것 같은데 저자의 긴 사연을 핵심적으로 압축하는 능력 덕분에 그들의 삶을 손에 쥐듯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 책은 그 세 사람의 삶과 수덕사의 교집합 말고도 그들의 삶 전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일단 책이 아담하다. 150여 쪽밖에 되지 않아, 읽는 데 전혀 부담이 없다.

그 안에 수덕여관의 수려한 자태와 경관, 그리고 세 명의 삶과 주요 작품이 오롯이 들어있다. 해서 이 책을 그렇게 알뜰하게 꾸민 저자의 센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돌 한 개로 세 마리 새를 잡았다는 기쁨 - 이런 표현은 너무 진부하지만, 그래도 사실이니까 – 도 느꼈으니, 이런 책, 나 혼자 보기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