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최근 몇 년간 나의 메일함에는 자잘한 상품 정보 메일을 비롯해 카드 청구서 및 결제 확인 메일과 약간의 학습용 메일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다. 열어서 읽어보는 것보다 ‘읽을 것’과 ‘그냥 버릴 것’을 구분해서 처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간혹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 지인들에게 인사 메일을 보내 모처럼 사람 냄새 나는 답장을 받거나 해도, 이내 곧 화려한 광고들을 싣고 도착하는 ‘새 편지’에 묻혀버리고 마는 이런 일상. 지금 와서 ‘아, 내 메일함이 이렇게 삭막했던가’ 하고 가슴 저미게 사무치는 건 모조리 다 이 책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여자의 잘못된 타자 습관(?)으로 잡지사가 받아야 할 ‘잡지 구독 취소’ 메일이 엉뚱하게도 평범한 한 남자에게 도착하면서 이 기묘한 인연이 시작된다. 만약 나에게 ‘제목 : 구독 취소’라는 메일이 온다면 망설임 없이 스팸메일함에 집어 넣어 영영 ‘수신거부’ 상태로 만들어버렸을 텐데. 어쩌면 이런 당연했을 조치조차도 후회하게 만드는 두 남녀의 유쾌한 메일 릴레이는 희한하게도 1년이 넘도록 이어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정 넘어 잠들 때까지, 몇 통이고 끊임없이.

홈페이지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쾌활한 그녀 ‘에미’와 매력적인 언어심리학 교수인 그 ‘레오’. 서로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이름과 직업, 나름 복잡한 약간의 사생활 정도였지만, 서로가 반할만큼의 매력적인 글솜씨를 뽐내며 가상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자칭 ‘바깥 세상의 삶’을 신기하리만큼 즐겁고 만족스럽게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서로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종잡을 수 없이 ‘사랑의 감정’도 깊어져 갔다. 어떠한 특별한 감정도 품지 않고 그저 가상에서의 삶을 즐기던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어느 새 서로의 ‘현실’에도 깊이 얽매이기 시작했다. 서로가 인정하지 못했던 ‘모니터를 넘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말이다.

내가 당사자가 아님에도 ‘에미’와 ‘레오’가 되어 그 메일을 받아보는 느낌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설렘과 행복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지극히 감성적인 두 사람의 메일을 하나 하나 체크하다 보면 어느 새 아쉬운 마지막 장에 이른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마지막 메일을 슬퍼할 새도 없이 제일 뒤 책 날개에는 그들의 그 이후 이야기를 담은 ‘일곱번째 파도’의 광고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망설임 없이 이 유쾌하고 로맨틱한 메일함을 어서 열어보길 강력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