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이 난 작품 중에 이상하게 읽기가 꺼려지는 작품이 있는데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그중 하나였다.

보급판으로 제작된 밀레니엄 시리즈 1탄이 8,000원에 풀렸을 때도 재작년 말에 6권 세트를 29,000원에 판매했을 때 역시 시큰둥하게 그냥 넘겼었다. 

분권이란 점과,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시리즈가 중단이 돼서 완성도가 떨어지고, 자칫 흐지부지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대로 영영 나하고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밀레니엄 시리즈를 재조명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영화를 보고 나서였다.

강직하고 정의로운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독특하고 묘한 매력을 풍기는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강렬함, 묵직함과 여운이 공존하는 분위기는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은퇴한 방예르가의 총수 헨리크 방예르의 여든 두 번째 생일날인 11월 1일에 어김없이 배달된 의문의 압화.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압화는 그에게 36년 전에 실종된 종손녀 헤리에트를 떠올리게 하는 고통스런 선물이었다.

 

교묘하게 위장된 수법으로 거액을 빼돌리는 경영자 베네르스트륌의 기사를 실었다가 명예 훼손죄로 고소 당해 유죄 판결을 받은 월간지 밀레니엄의 공동 창간자이자 기자인 미카엘에게 헨리크 방예르가 거액의 보수와 베네르스트륌의 사기를 입증할 수 있는 정보 제공을 약속하며 헤리에트의 실종 사건을 의뢰하고 마카엘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밀레니엄과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제안을 수락한다.

 

보안경비업체의 비밀조사원 리스베트와 사건의 진상에 점점 다가가던 미카엘은 추악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지만 진실의 폭로를 앞에 두고 기자로서의 신념이 흔들리고 만다.

 

스티그 라르손의 자전적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분권의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치밀한 구성과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하나하나의 작은 단서들이 모여 서서히 모양을 갖추면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기까지 정교하고 세밀한 전개가 돋보었고, 각 장의 맨 앞장에 인용된 문구가 내포하는 의미와 헤리에트 실종 사건의 연관성을 풀어가는 재미도 한몫했다.   

 

당초 10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초석을 다듬느라 세세하고 꼼꼼하게 진행 되는 탓에 1권은 다소 진도가 안 나가지만 2권에 들어서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 진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복지강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어두운 모습인 인종차별주의,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비열하고 악랄한 폭력, 사리사욕에 열을 올리는 부패한 경영자와 기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됐고 사회에 만연한 각종 부조리를 꼬집었다. 

 

거식증 환자가 연상되는 깡마른 체구에 얼굴에는 피어싱을 하고 고스족 화장을 즐기는 천재 해커 리스베르는 잊을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몸에 문신을 새겨 넣으며 복수를 다짐하는데 반드시 당한 것 이상으로 앙갚음을 하고야 마는 집요함과 강인함을 지녔다.

 

사람은 누구나 비밀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비밀을 발견하느냐죠. - 리스베트가 한 말 중 인상적인 부분.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감춰진 과거의 사연이 제2탄 [벌집을 발로 찬 소녀]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질 듯 보인다.

 

시리즈 2탄과 3탄이 옆에 있었다면 연이어서 읽지 않고는 못 배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주문을 서두르는 수 밖에.

작품의 세계적인 성공을 알지 못한 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스티그 라르손이 참으로 안타까웠다.기획했던 10부작이 모두 출간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