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던 쉰세 번째 생일날, 정신분석가 리키 스탁스 앞으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는 평온했던 그의 삶을 한순간에 혼란에 빠뜨린다.

자신을 럼플스틸츠킨이라고 밝힌 미지의 인물은 15일 안에 자신의 정체를 밝혀내야 하는 게임에 동참해야 하며 만일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스탁스의 친척들 중 한 사람을 파멸시킬 것이고, 무고한 친척을 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스탁스 자신이 자살하는 것 밖에 없다며 위협을 가한다.

 

반신반의하던 그에게 버질이라는 여성이 찾아와서 자신은 이 게임의 안내자이며 자신이 알려주는 길을 가야만 한다는 말을 전하고, 그녀가 말한 단서를 ？i아가다가 장기 상담환자중 한 사람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을 알게 된다.

 

자살 징후가 없던 환자의 자살을 시작으로 스탁스 박사가 평생 일궈온 정신분석가로서의 기반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조작된 성추문에 관한 내용이 담긴 투서 사건과 은행에 예치된 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25 년 동안 그의 보금자리였던 집은 물에 잠겨 쑥대밭이 된데다, 그가 도움을 청한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는 등 철저히 짓밟히고 고립된 현실에 스탁스는 절망하고 만다.

 

이 모든 일의 기저에는 20여 년 전 한 여성환자의 자살사건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된 스탁스는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지만, 예고된 보름이란 기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자동으로 음성지원이 되고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사실적인 묘사가 인상적이었던 [애널리스트]는 이제라도 존 카첸바크란 작가를 알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긴박하게 펼쳐지는 상황전개가 스릴러의 재미를 잘 살려줬고, 심리 스릴러의 대가답게 서서히 무너져가는 스탁스의 심리를 실감있게 표현했다.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스탁스의 한없이 절망스런 상황과 익명성을 무기로 우위에 올라선 럼플스틸츠킨의 치밀한 복수가 펼쳐지는 1부, 새롭게 태어난 스탁스의 반격이 펼쳐지는 2부, 드디어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되는 3부로 나눠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냥개에 쫓기는 토끼처럼 나약한 존재였던 스탁스가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상황에서 분출하는 좌절감과 분노는 결국 그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고, 여우가 됐다가 사냥개도 되기도 하면서 럼플스틸스킨과 여우와 사냥개 게임을 벌인다.

여우가 얼마나 머리를 잘 굴리느냐, 사냥개는 얼마나 집요하게 따라붙는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고 어느 쪽이 이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스탁스와 럼플스틸츠킨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적당히 무게감이 있고 진지함이 스며 있는 멋진 작품이었다.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읽어볼 것 같다.

무엇보다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사랑놀음이 안 나와서 오롯이 스탁스와 럼플스틸스킨의 심리 대결을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번역자분의 번역도 참 좋았다. 이분 기억해 둬야지.^^

 

요즘 회자되고 있는 [하트의 전쟁]이 아니었다면 존 카첸바크에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을 거고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표지와 제목을 달고 나온 [애널리스트]를 읽는 일은 아마도 없었을 거다,

존 카첸바크의 작품 중에서 중박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 [애널리스트]가 예상외로 재미있어서 읽은 독자마다 칭찬을 하는 [하트의 전쟁]은 과연 어떤 작품일지 궁금증이 더 커졌다. 

 

한동안 북유럽 스릴러와 일본 미스터리에 관심이 쏠리다보니 제프리 디버씨의 작품 이외의 영미권 스릴러는 관심에서 멀어졌었는데 존 카첸바크가 다시 한 번 꺼져가던 영미권 스릴러의 불씨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