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동아시아에 삼국지가 있었다면 현대 동아시아에는 은하영웅전설이 있다.'

'나에게는 은하영웅전설 전과 후로 시대가 구분된다.'

  책의 날개에 써진 찬사들이 전혀 과하지 않은 훌륭한 판타지 소설이다. 행여나 판타지 소설 특히 일본 라이트노블 계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 할지라도 이 소설을 읽는다면 장대한 우주로의 꿈을 펼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이다.거대한 시리즈 앞에 부족한 리뷰가 오히려 흠집을 내지 않을까 걱정스럽긴 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께 소개하는 마음으로 써보기로 했다.

  소설은 현재로부터 수십세기 이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항성간 이동기술을 개발한 인류에게 지구는 너무나 좁은 공간이었다. 지구를 벗어나 여러 항성계에 정착해 살게된 인류에게 치안이나 경제 등 극심한 혼란이 오게 된것은 넓어진 거주 공간만큼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이렇게 광대해진 인간 사회를 단 한사람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초인적인 능력으로 통일하게되고 사회를 수습한 후 또다시 수세기가 지난 뒤를 중심으로 소설은 이야기를 펼친다.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인간의 능력이 닿는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독재, 전제정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폭압에서 견디다 못한 일부는 독립을 시도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골덴바움 왕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지만 하이네센을 중심으로 한 무리가 결국 탈출에 성공하게 되고 자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행성 동맹'을 세우게 된다. 민주주의의 자유행성 동맹이 전제주의의 골덴바움 왕조와 대립한지도 어느덧 2세기 반이 흘러 양쪽 모두 전쟁에 염증을 느낄 무렵 골덴바움 왕조에는 혜성과 같이 라인하르트라는 젊은 청년이 나타나 루돌프 대제 이후 최고의 전공을 세우기 시작하고... 이에 맞선 자유동맹 행성에서는 역사가 지망생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검은머리 청년 양 웬리가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이런 배경을 가지고 수많은 영웅들이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장렬히 싸우게 된다. 주변에서 수많은 판타지 소설들이 나왔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1980년대 연재된 이 소설이 아직까지 생명력을 지니는데는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인류가 만들어낸 정치체제 중에서 전제주의(혹은 독재)와 민주주의의 끊임없는 싸움을 훌륭한 통찰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제주의보다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정의가 지켜지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수많은 민중들에 의한 우민정치 혹은 포퓰리즘 등의 위험성은 항상 가지고 있고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의 비효율성 등 완벽한 정치제제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가장 훌륭한 인재가 다스리는 전제정치와 교묘한 말솜씨와 연예인과 같은 이미지로 표를 얻은 무능력자가 다스리는 민주주의 중 어느것이 우월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작가는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민중들이 '정치'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고 '누군가 잘난 사람이 나와서 대신 해주면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음을 작가는 누구보다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소설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의 다양성과 개성이 뚜렷하다. 외모, 능력, 침착성 등 어느것하나 빠지는 것 없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그를 옆에서 지키는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비롯한 수많은 부하들, 어딘가 허술해보이지만 전투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지휘관이 되는 양 웬리와 그의 부하(혹은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선과 악을 떠나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양쪽 다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인물들이 퇴장할 때를 알고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감각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것과 더불어서 여러 전투장면들의 모습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싸움의 긴장감도 소설의 흥미를 더한다. 양 웬리 최고의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이제르론 요새 공략전부터 바라트 성계 등 수많은 전투들은 삼국지연의의 전투장면에 비견할 수 있을만큼 흥미진진하다. 역사가 양웬리와 예술가 제독 메크링거의 전투에 대한 평가들도 자체로 소설적인 가치를 높여주고 있기에 놓칠 수 없다.

  물론 로엔그람 왕조와 자유행성동맹 사이의 페잔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지 않음과 지구교의 활약 같은 면에서는 조금은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두 세력의 장렬한 신화만으로도 이 작품은 끊임없는 찬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 아직까지 이 소설을 접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판타지 소설의 필독도서로서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밤하늘은 당신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광할한 별의 바다일 것입니다. - 만화가 굽시니스트

은하영웅전설, 양웬리, 라인하르트, 전제주의,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