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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과 김려.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정조 때의 사람이라 하면 홍국영, 정후겸 정도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 빨리 읽어 내려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이옥은 뛰어난 문장가였다. 절친인 김려가 생각하기에 이옥의 글을 읽으면 그곳에 있지 않아도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며 재기 발랄한 글을 썼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있듯, 빛인 김려가 있었다면 어둠인 정조가 있었다. 정조는 이옥의 글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똑 부러진 이유는 드러나지 않지만 무엇 때문인지 이옥은 공명정대하고 위대한 임금이라 평가받는 철인 왕의 미움을 샀다. 조선에서 왕의 말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옥은 그러했다. 내가 정조라면 그래서 그토록 처절하게 이옥에게 수모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등을 꼴지로 내리고 양반에게 군역을 시키고. 빈정을 상했을 거다. 감히 너 따위가 글 나부랭이 쓴다고 내 말을 안 들어? 정조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을 거다. 신하들의 손에 아버지를 잃었으니,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하는 가만둘 수 없었을 것이다. 정조가 공명한 것은 그가 세워 놓은 굴레 안에서였다. 그 굴레를 넘어서서 재주를 뽐내는 이옥을 정조는 혼낼 수밖에 없었고 정조의 눈치를 살피던 조정은 그 뜻에 따라 순수하게 글을 쓰던 이옥을 천하의 역적으로 몰아붙였다. 그 와중에 김려는 평생지기를 강력하게 지지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지기라 불리는 것조차 겁내 했다. 그가 비겁자라서가 아니다. 그들의 우정이 사그라들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김려는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다. 딸린 식구들이 있었기에 친구 이옥을 나 몰라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옥도 김려를 줄곧 이해하며 원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이옥의 아들 우태가 원망의 빛을 내비치나 그 역시 김려의 입장에 섰다면 올곧이 지기를 옹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차마 어린것의 배고픔을 보는 것을 힘들어 해야 하는 아버지였다면 말이다. 그래서 귀양에서 돌아와 그토록 쉽게 연희와 동무라 부르던 이들과 연락을 끊었던 것이 아닐까? 혹여라도 내 가족에게 또 다른 해로 다가오지 않을까 해서. 그들에게 진 마음의 빚은 나중으로 밀어두었다가 그들이 원망을 쏟아내면 받으려 했을 것이다. 그게 소심하지만 죽지 않고 하루를 또 살아가는 김려의 모습이었다. 김려는 자신이 그러할 것을 이옥이 이해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둘은 친구이며 지기다. 남들이 보기에 배신이지만 그 둘 사이엔 끝까지 믿음이 존재했다. 김려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이옥을 응원했다. 비록 그것이 우리에겐 하찮고 미약한 응원이라고 할지라도 이옥에겐 세상 무엇보다 강하고 행복한 응원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김려를 비웃어도 이옥만은 기꺼이 응원을 받으며 또 다른 응원을 김려에게 보냈을 것이다. 친구, 이만하면 충분하네. 덕분에 외롭지 않았네 하고 말이다.